‘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차돌의 말에 기대어,
허진희 장편소설, 『악의 주장법』(자이언트북스)
『악의 주장법』은 독초 박사 ‘고희비’와 그녀의 비서 ‘차돌’이 경성 최고 미남 미카엘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작된다. 희비와 차돌만큼이나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매력 있고 본인만의 색깔이 뚜렷하여 읽는 동안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높인다. 읽는 동안 작가님을 질투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이 글을 써내고야 만 작가님이 부러워서 (과장을 조금 보태어) 죽을 것 같았다. 동시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누군가는 써야 했을, 쓰고 있을 이야기를 독자라는 이름으로 읽을 수 있어 감사하고, 벅찼다. 책을 읽으면서 짙은 벅찬 울림을 느끼긴 오랜만이다. 스토리를 끌어가는 인물들의 삶이 ‘환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라는 시작점에서 출발했다는데, 정말이지 그 시작점이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또는 그 인물들의 삶을 열렬히 응원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백오교와 미카엘, 희비와 차돌을 만나게 된 건 우연이라는 가면을 쓴 필연을 알아챈 나의 행운이다. 나의 2025년 책은 『악의 주장법』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백오교의 자살, 미카엘의 죽음, 지등조의 죽음, 은실의 죽음. 그리고 백오교의 시집 『악의 주장법』을 가슴에 품고 죽은 이들과 칭송하던 미카엘의 죽음을 뒤따르던 이들. 수많은 죽음이 등장하지만, 피비린내가 나지 않고 오히려 진중하고 우아하다. 그래서 가슴이 저릿하다가 못해 아리다. 심장을 쥐어 뜯긴다고 말해야 할까. 심장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다. 갑자기 수많은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주는 고통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미카엘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마무리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죽음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미궁 속으로 빠질 뿐만 아니라, 죽음이 연달아 일어난다.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고 뛰어다니지만, 알아낸 것은 없고 누군가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희비와 차돌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죽음을 마주하지만, 죽음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장애물을 하나씩 넘기며 진실에 다가간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쩌면 ‘악’이 세상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 일어날까 싶어서. 「악에 대하여」에서 사토 쥰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고, 사람의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어둠을 앞에서 겁에 질려 주저앉을 꼴이 된 기분이었다. 백오교의 죽음과 미카엘의 죽음, 그리고 뒤로 이어진 수많은 죽음이 실은 ‘사람의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이다. 쥰은 카논이 젊은 날 사랑했던 정인 사이에서 가진 아이였지만, 정인은 카논을 떠났다. 그렇게 사토가에 시집을 간 카논은 쥰을 낳았지만-사토도 아는 사실이다. 카논의 집안 위세만 아니었다면 남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받아줄 리가 있을까.- 연약하기 그지없는 아들 쥰이 못마땅할 뿐이다. 쥰이 사라지길 바라는 카논의 마음을 쥰이 알아버렸고, 쥰은 친부 그리고 친모, 양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미 버린 받은 몸이지만 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쥰의 사랑, 아니 집착의 시작이었을까. 쥰은 시라시이 유이토 즉, 백오교가 쓴 詩를 애정했다. 그 이상이었다. 자신이 백오교의 소년이라고 굳게 믿었다(자신과 백오교를 동일시했던 걸까). 그저 백오교의 시를 좋아한 팬으로 보였지만, 아니었다. 백오교와 같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카논의 약방에서 훔친 자비초를 건넬 생각도 했으니. 백오교를 향한 쥰의 마음은 처음부터 선을 넘었다. 처음에는 악이 아니었지만, 자신보다 백오교와 더 가까운, 아니 가까움을 넘어 죽은 백오교를 정인을 그리워하는 듯한 미카엘의 모든 것을 보고,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질투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되어 악을 만들었다. 악은 당연히 되돌릴 수 없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그렇게 쥰은 악이 되었다(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백오교를 향한 어긋난 쥰의 마음은 ‘죽음의 소동’을 일으켰다. 쥰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이유로 들었다. 자신이 죽였지만, 백오교와 미카엘이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을 자신이 알게 한 미카엘 탓이고 지등조의 협박을 막을 수 있도록 돈을 주지 않은 부모님의 탓이고, 진실을 찾기 위해 들쑤시고 다니는 고희비의 탓이라고. 쥰은 희비가 자신이 벌인 일을 알아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미카엘을 죽인 범인이 자신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을 것이었다. 정말 사람 형체를 한 ‘악’이 아닌가. 쥰이 악이 되기까지 분명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죽음의 소동을 일으키며, 독초와 목조름으로 저지른 살인은 절대 정당화할 수 없다.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죽음이든 자비로운 죽음은 없다는 희비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겠다는 쥰의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악은 나약하고 그만큼 바스러지기 쉽다’라는 것을 느꼈다. 쥰은 악으로 물든 세상에 본인 하나 더 물든다고 뭐가 대수냐고 말했다. 악에 물든 세상이라는 것을 쥰은 알았고, 악이 되기로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악이 되어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수많은 죽음의 영혼을 절대 달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저승에 가서도, 혹여나 그곳에서 백오교와 미카엘을 만나더라도 백오교 당신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미카엘 당신 탓이라고 악을 쓸 테니까. 쥰의 사랑(집착)과 선택이야말로 틀렸다. 악은 반드시 파괴되니까.
죽음의 소동을 끝낼 수 있는 것은 미카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고, 희비와 차돌은 결국 밝혀낸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가슴을 졸였다. 내가 예상하는 대로 맞아떨어지지 않길 바랐지만, 나의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딱-, 맞아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저미고, 심호흡으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몰입하여 그날 해야 할 일을 모두 잊은 채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는 반면,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책장을 덮고 펼치기를 자주 반복했다. 학창 시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나라가 겪었던 고통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잊고 있다가 마주친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를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교과서와 책으로만 듣고 봤던 이야기들이고 내가 겪지 않았지만 내게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나의 역사가 아닌가.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과 분노를 누르는 게 버거웠다. 나중에는 누르지 않았다. 꾹꾹, 참아내다가 터진 부분은 해가 저문 시간에 희비에게 자비초를 전달하기 위해 찾아온 용손과 맹단, 막동이가 나오는 장면이다. 막동이가 오정 삼촌의 다리에 매달리고, 오정 삼촌이 떠는 장면에서 팍-,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1923년 동경의 가을밤, 대로 한복판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임신한 아내 진이를 끔찍하게 잃었던 날이 겹쳐 떠올라서, 오정의 떨림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잘 알아서. 엄청난 삶을 바란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저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사랑하는 아내와 자기를 쏙, 빼닮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길 바랐을 것인데 그것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악행을 저지른 이들은 따로 있는데, 공포와 고통 속에 사는 건 세상을 잃은 이들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 오정 삼촌이 있는 것이다. 끔찍하게 죽은 아내를 떠나보낼 수 없는 오정은 발작을 종종 일으키고, 진이에게 조금만 더 이승을 돌아다녀 달라고 자신과 함께 저승으로 가자고 말한다. 오정이 죽을 힘을 다해 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기록하고, 기록하자는 일념 하나. 그런 오정에게 막동이의 발랄한 모습은 얼마나 위로가 되면서도 짙은 그리움과 슬픔이 복합적으로 몰려올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싶다가도 현재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면목이 없다. 수많은 목숨으로 간절히 되찾은 나라를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을 하늘에서 보고 계실 테니. 지금 세상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청산가리를 가슴 한쪽에 품은 채 먼 길을 떠나 있는 오연과 동하, 동지들과 같은 이들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목숨을 내놓고 지켜야 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 즉, 나라가 평안하고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작년 연말에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발령’(국가가 비상이었던가. 지은 죄가 얼마나 많길래 비상계엄을 쉽게 내린 걸까. 이것이야말로 정말 국가 비상이다.)으로 불안과 공포, 분노를 느껴야 했고, 혼란스러웠다. 정말 무서웠다. 피가 울컥, 흐르고 모든 걸 부숴버리는 총과 폭탄 앞에서 순식간에, 우주를 떠도는 먼지보다 더 작게 바스러지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져서, 역사책에서 배웠던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이, 같은 시공간에서 한쪽에서 총을 겨누고, 다른 한쪽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아물 수 없는 상처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된다는 것은 정말 일어나서 안 될 일이다. 끔찍한 악몽이다. 악이 정신 사납게 우리나라를 활개 치고 다니는 걸 두 손 놓고 보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추운 날 거리로 뛰어들었다. 함께이기에 거리는 외롭고 춥지 않았다. 희비 곁에 언제나 그녀를 걱정하고 지켜주는 차돌이 있어서 함께 진범을 밝혀내고, 희비가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야기된 육체적 고통에서 천천히,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차돌이 없었다면 희비의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차돌에게 희비는 특별하고 거대한 세상이고, 희비에게 차돌은(이모 오연가 희비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돌이 지금보다 휠씬 근사한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반드시 일조해 줄 것’이다. 서로에게 특별한 세상이 되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이다. ‘내일은 분명 더 나아질 거’라는 차돌의 예언에 기대어 해사한 시대로 가고 싶다는 희비의 말에 그늘진 마음에 햇살 한줄기가 들어왔다. 지금 이 시기에, 그리고 어둠의 동굴에서 나와 햇빛을 본 지 두 달 조금 넘은 나에게 희비와 차돌의 존재는 한동안 내 마음의 햇살이 되어줄 것이다. 희비가 차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심리적 고통에서 한 걸음 벗어날 수 있었을까,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예언에 기대어 해사한 시대로 향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을까. 거의 300쪽 분량인 스토리를 읽으면서 울컥하고 분노하고 두렵고 슬펐지만, 연신 마음속으로 ‘제발, 제발, 햇살이 비추는 결말’을 바랐는데 다행히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을 수 있는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결말로 책장을 덮을 수 있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작가님의 마침표와 나의 애정 어린 손으로 덮인 책장으로 ‘희비와 차돌의 이야기가 끝났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 희비의 약혼자 동하와 희비의 이모 오연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살아생이별하는 것만큼 가슴 찢어지는 일도 없는 것 같다. 독초 박사답게 독초로 인해 이승과 저승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세상을 다닐 희비와 그녀 곁에서 든든하게 함께 할 차돌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야말로 희비와 차돌이 지금보다 훨씬 근사한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일조할 것이다. 차돌이 희비와 세상을 함께 누비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자신의 삶을 근사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마음과 생각이 깊은 차돌이니, 세상을 다정히 바라보고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좋은 어른으로 자랄 테니 말이다. 차돌은 웃음을 잃지 않고, 악에 물들지 않을 테니까(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악은 바스러지기도 쉽지만 물드는 것도 쉬우니까.). 악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강한 선의 힘으로 악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길. 엄마 뱃속에서부터 독과 하나처럼 지낸 희비가 처음에는 안타까웠지만, 희비이기에 독초와의 끊을 수 없는 숙명을 신이 준 게 아닐까. 희비와 독초의 관계는 ‘애증’이다.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마음.
세상 곳곳에 잠재되어 있을 수많은 희비와 차돌을 상상한다. 나는 희비일까, 차돌일까? 그것도 아니면, 겁 많은 사람일 뿐일까. 스토리를 천천히 다시 떠올려보니 백오교와 미카엘이 생각난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진다. 백오교와 미카엘은 서로에게 사랑이었을까, 독이었을까. 결국 둘의 결말은 시간을 둔 죽음이었는데. 절대 듣지 못할 답이니 나의 질문은 영원히 물음표로 남을 것이다. 가끔 생각날 때, 질문을 바꿔 물어보고, 또 물어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백오교가 꼭 이상 시인,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정말 천재 시인들이 아닌가. 가끔은 그들이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그 시대에 태어나고 펜을 들어 종이에 글자를 쓴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 시대가 아닌 지금 시대를 사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희비와 차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오정 삼촌이 해준 든든한 밥을 먹고, 다시 독초로 시작된 이야기의 진실을 파헤치러 혹은 독초를 찾으러 길을 떠나는 중일까. 나는 그들의 하루를 궁금해하며, 그들이 여유와 평안이 깃든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차돌 말대로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오늘을 버티게 하는 희한한 힘이 있다. 우울의 넝쿨에 몸을 맡기고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았던 시간에 나는 넝쿨의 가시가 나를 찌르는지도 몰랐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심리적 고통이 조금씩 가라앉을 때 육체적 고통이 시작되었다. 나의 심리적 고통이 육체적 통증을 만들어낸 것이다. 육체에 앞서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희비가 겪은 수많은 일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심리적 고통을 더하더라도 희비 곁에는 차돌이 있고, 무엇보다 동하와 한 약속이 있으니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낼 것이다(내 바람이기도 하고). 잘 버티길 바란다.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 ‘희비’, 희비를 위해 태어난 단어가 아닐까.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게 있는데, 『악의 주장법』과의 만남이 나에게 그랬다. 늦지 않게 만나게 되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귀한 시간을 갖게 해준 허진희 작가님과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에 진심의 감사를 전한다. 차돌의 예언에 기대어 해사한 시대를 향해 나도 한 걸음, 딛어볼 용기를 내본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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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53쪽 : 희비가 차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