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란 말이 유행처럼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었던 시절이 있다.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민중신학부터 민중문학, 민중가요, 민중문화 등등등.
지금은 파편만 남긴 채 그 흔적/자취만 겨우 찾아볼 수 있다.
민중이란 말 자체가, 그리고 민중을 접두어로 하여 파생된 여러 개념과 분야들이 과거의 역사가 되고 있다.
민중사도 그 중 하나이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충격과 민족적/계급적 자각, 뒤이은 사회변혁을 위한 각 분야 민주화운동 및 통일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이자 변혁의 주체로 보는 인식을 기저에 두었고 또 그것이 심화된 결과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민중에 대한 재인식을 바탕으로, 민중을 기반으로 역사를 조망하고 서술하고자 했던 것이 민중사였다.
그러나 다른 민중 담론들과 마찬가지로 밖으로 지구적 차원의 냉전이 끝나고 안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1990년대 이후 민중사는 빠르게 그 목표와 방향을 상실했다.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상실했다고 회자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민중사의 역사적/시대적 사명은 다했는가?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새로운 민중사를 모색할 수 있고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연구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2000년을 전후해 기존 민중사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횡행하는 가운데 떠난 사람도 있고, 남은 사람도 있다. 그 중 남은 사람들은 2005년 역사문제연구소 내 민중사반을 결성해 연구와 고민을 이어갔다. 이 책은 그 고민의 첫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자체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민중사 연구의 여정이며 연구/연구자들의 하나의 증언이자 자기고백이라 할 수도 있겠다. 또 한국 현대사의 사학사의 일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얘기하는 새로운 민중사의 이론적 논의,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직접 역사서술에 적용한
여러 편의 논문들이 담겨 있다. 비단 한국 현대사 공부를 위해서만 아니라 민중이란 말에 대해 조금의 관계/추억/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고 새로운 민중사 시도에 동의하든지 또는 그렇지 않든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민중이란 단어에 추억/호감을 느끼는 사람만큼이나 반대로 단어 자체만으로도 까닭모를 불편함을 느낄 독자들도 적지는 않을 것 같다. 미리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본문에도 적혀 있지만 지금 민중사 연구에서 민중이란 개념이 정확히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고민하는 어떤 주체를 민중이라 명명하는 게 옳은 것인지조차 명확히 합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며 보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믿음이 민중사의 존재 이유라고 강변하는 저자들의 문제제기에 주목할 때 독자 또한 보다 진지하게 역사/역사서술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