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재직 중인 한국근대사 전공 정병욱 교수의 신작이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국편 근무 당시 식민지기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 기록을 보다가 발견했던 네 명(또는 집단)의 기록에서 그들의 행적, 나아가 식민지기 삶의 일단을 그려낸 글이다.
사료에 바탕한 팩트와 그 팩트들을 잇는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인해 저자의 말마따나 식민지기 여행이 충분히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복원되고 있다.
저자가 복원해낸 인물 또는 집단은 총 넷이다.
첫째는 시골 출신으로 독립을 열망했던 경성중 엘리트 유학생 강상규,
둘째는 자소작농으로서 식민지권력에 반항적이었던 김영배,
다음은 1930년대 서울 도시화 과정의 경제적 갈등을 반영하는 신설리패와 중국인 노동자,
마지막으로 식민지교육에 모욕을 느꼈던 교사 홍순창과 소학교 학생 김창환과 그 친구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의미에서 불온을 시도하고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식민지 유산으로서의 불온이다. 중일전쟁 이후 치안유지법으로 조선인의 사상까지 통제하고자 했던 일제당국의 망에 걸린 불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 책은 네 사례를 통해 당시의 불온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어떠한 것도 책을 읽기 전 생각했던, 우리가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간주하는 인상과는 적잖이 다르다.
다른 하나는 방법으로써의 불온이다. 저자는 동료 연구자마저 보다 비중있는 인물, 사건을 연구하라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식민지기 소시민들, 작은 사건을 파헤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에서 민주주의란 이름 없고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과 역사를 찾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머리말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옮겨둔다.
"식민지 시기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역사 전쟁' 지역이다. 그렇다고 실제 다칠 일은 없고 귀환은 보장된다. 그러니 때론 과감히 헤매고 다른 길로 가보기를 권한다.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여행은 좋은 여행이 아니다."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여행은 좋은 여행이 아니다. 비단 이 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인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여러 모로 많은 이들이 읽어보았으면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