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쯤 전 학교에서 한국현대사 수업을 들었을 때, 1945년 일본 패전(해방) 후 징용 징병으로 각지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귀국이란 주제가 잠깐 언급되었었다. 밀선을 타고, 또는 공식 귀국선을 타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사할린처럼 소련이 진주한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 다행히 귀국선에 올랐으나 의문 모를 사고로 배가 침몰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그런 사실들을 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로 조선에 있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해방 당시 약 80만 명에 달했다던 일본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불과 몇 달만에 조선을 완전히 떠나갔을까? 그들이 떠날 때 패전국민임을 자각하고 조선인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떠나갔을까? 아니면 떠나는 그 순간까지 조선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을까? 또 상전으로 군림하다가 갑작스레 떠나가는 일본인들을 보는 조선인들의 마음은 어떠했고, 양 민족의 '이별'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의 귀국과정은 이 시기(해방정국) 역동적인 정치경제 사회 여러 주제에 가려, 또 재일동포들의 귀국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참고서도 드물어 관심이 있어도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사실 일본에서는 종전 당시 일본인들을 본국으로 보내는 일을 직접 담당했던 모리타 요시오란 사람이 이후 관련 자료와 귀국자들의 수기 등을 모아 정리한 책이 있지만 일본어이고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진 않았다.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이 책은 기존의 자료를 망라하면서도 딱딱한 역사서의 형식을 띠기 보다는 패전을 맞은 한반도 일본인들의 다양한 귀국 양상을 흥미롭게 보여주는데 주력하고 있어 반갑다. 나 자신이 그런 것처럼 해방 당시의 사회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부담없이,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책을 쭉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제목만 보고는 일본인들의 귀국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는 한국사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막상 알라딘에서는 일본사로 분류된 것에도 살짝 놀랐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일본인들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의 귀국은 자연 조선사회와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패전을 짐작한 조선총독부의 무책임한 통화 발행이라든지, 일본인들의 재산처분 및 밀수, 그 과정에 이윤을 노리고 개입 중개 역할을 한 몇몇 조선인 모리배들 등 다양한 '이별'과정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풍경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책은 패전 후 하루아침에 달라진 일본인들의 처지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기의 흥미로운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5장에서 언급된 식민지기 목욕탕 문화와 조선인 입욕 거부, 차별 문제는 식민지기의 일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단편이다.
저자는 결론 즈음에서 <요코 이야기>로 화제가 되었던 한일 역사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또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피해자인식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또 어떻게 전후에도 살아남아 일본 국가적 차원으로 이어졌는지 등을 언급하고 있다. 또 그처럼 뒤섞인 역사인식의 극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저자 나름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1945년 한일 단절의 양상을 살펴보고, 나아가 현대 한일관계 갈등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저마다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한국사, 내지는 한일관계사에 더 어울리는 책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