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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멸종 실패기
  • 유진
  • 16,920원 (10%940)
  • 2026-04-22
  • : 795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평소 사극이나 영화를 접할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왕이나 귀족, 혹은 시대를 풍미한 위인들과 동일시하며 흐름을 따라가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전 세계 수십억 인구 중 그런 대단한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왕이나 장군보다는 이름 없는 소시민이나 농민, 혹은 노비였을 확률이 훨씬 높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의 영웅들에 가려진 진짜 주인공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를 보여준다. 왜 진작 이런 시각으로 역사를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만큼 저자의 통찰이 영리하게 느껴진다.

우선 씻는 문제부터가 그렇다. 산업혁명 이후의 런던조차 온 가족이 대야 하나에 담긴 물로 돌아가며 목욕을 했다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물을 길어오는 일은 주로 여성과 아이들의 몫이었는데, 인력으로 길러온 물이 얼마나 넉넉했겠는가. 지금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온수가 나오는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니, 물을 데우고 옮기는 중노동을 담당할 하인을 부릴 정도의 부자가 아니면 제대로 씻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청결이 곧 부의 상징이었다는 말이 생경하면서도 납득이 간다.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드레스의 귀족들도 사실은 지독한 체취를 감추려 향수를 뿌려댔을 뿐, 실제 위생 상태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을 것이다.

먹거리 문제는 더 심각하다. 냉장·냉동 시설이 없다 보니 왕이 아닌 이상 귀족이라 해도 상한 음식을 먹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식탁 위 고기가 변색되어 있고 와인 잔에 벌레 사체가 떠다녀도 아무렇지 않게 먹어야 했던 시절, 식재료의 부패는 질병과 감염의 위험으로 이어졌다. 특히 당시 도시 사람들의 생존을 좌우했던 빵 이야기는 참 안타깝다. 비싼 밀가루를 덜 쓰기 위해 분필의 재료인 탄산칼슘이나 명반, 석고 등을 섞어 양을 부풀리는 눈속임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수한 밀가루 빵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에, 시큼하고 이상한 맛이 재료의 문제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건강을 위협하는 가짜 빵이 일상이었으니, 1840년대 영국인의 평균 수명이 40대 초반에 머물렀던 이유가 비단 낙후된 의술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생활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세의 성은 얇은 벽 사이로 온갖 소음이 들리고, 유리가 귀해 천이나 나무 덧문으로 막았던 창문 틈으로 바람과 먼지, 소음이 그대로 들이치는 열악한 공간이었다. 여기에 마취제 없는 수술대, 어린 광부들의 중노동, 불편한 의복까지 더해지면 우리가 흔히 문명이라고 부르는 시대의 이면이 얼마나 척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시대물의 화려한 영상미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실제 고단함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어떤 상황에서 울고 웃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역사를 바라보는 폭을 넓혀준다.

책의 제목인 ‘멸종 실패기’는 참으로 기발하다. 인류의 역사는 화려한 성공의 기록이라기보다, 이토록 불결하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끝내 버텨온 생존의 기록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깨끗한 물 한 잔, 안전한 집, 그리고 마취제가 당연히 있는 수술대가 사실은 인류가 오랜 시간 겪어온 시행착오와 희생의 결과물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과거를 정확히 인식할 때 지금의 일상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고,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눈도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참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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