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반에 책을 읽을 때 - ‘개’는 해리 같은데 , ‘늑대’는 아다일까 벤일까 고민하였었다. 결말에 이르고 보니 늑대는 둘 모두를 지칭하는 듯하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서구 문명에 적응해 사는 해리는 아다를 만나 강렬한 끌림에 휩싸이고, 자신의 본성을 깨운다. 이러한 둘의 관계를 두고 정념에 의한 사랑이 아닌, '피의 부름' 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한편, 아다와 벤은 같은 ‘늑대’ 로 묶일 순 있지만, 그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피의 특징을 분출하는 방식은 다르기에 -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가진 둘을 관찰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어렸을 때부터 아다는 해리에게 (거의 광기에 가까운) 사랑을 느끼고, 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전부 가진 해리에게 질투와 적개심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 그래서 난 이들의 관계가 그저 벤>아다>해리의 삼각 관계로 정의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성(뿌리)을 가졌지만 너무 다른 서로의 삶에 대한 동경, 끌림, 혹은 질투. 같은 이방인이지만 다른 지위에서 살던 이들 간의 ‘어쩔 수 없는’ 묘한 감정. 본질적으로 개는 늑대를, 늑대는 개를 동경하는 감정이 어긋난 사랑으로 표출된 것 같다. 아무리 다른 삶을 살아왔더라도 뿌리가 같은 이들이 결국엔 함께 힘을 합쳐 성공을 이루면 안되는걸까 - 생각했었지만.. 그건 너무 낭만적인 기대였나보다. 근본은 같아도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그 시간을 서로에게 덧댈 수는 없던 셋. 내가 상대방에게 파멸을 일으킨다는 걸, 나의 감정을 상대방은 영원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곤 뿔뿔이 흩어지는 셋.
해리가 아다의 처절함과 내적인 열정에 탄복하고, 금욕적이었던 아다는 해리를 만나 자신이 지금껏 몰랐던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느끼는 과정은 - 개와 늑대가 함께 하며 서로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파멸을 막기 위한 희생으로 멀어지는 둘의 관계가, 뿌리는 같아도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개와 늑대의 관계와 정말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비유가 참 대단하다는 것을 여러모로 느꼈다.
등장인물 모두가 (사실 어쩌면 로랑스까지도) ‘망한 사랑'을 겪었지만, 내가 주인공 중 하나라면 - 해리의 입장에 섰을 때 가장 불행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다를 만나고 이제서야 스스로의 본성, ’늑대‘의 피을 깨우기 시작했는데.. 생사의 문제 앞에서 다시 ’개‘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아다가 해리는 벤처럼 모든 것을 두고 떠나 새출발할 수 없을 거라 이야기했듯이 - 본디부터 ’개‘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끝내 ’늑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해리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과연 해리는 다시 돌아온, 안온한 ’개’의 삶에 만족하며 살까? 아니면 내면의 ‘늑대’를 죽여야해서 영원히 불행할까?
마지막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는 벤과 아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둘 다, 특히 벤은 결코 이상적이거나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게 무너지고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상황에서도 살 길을 찾는 둘의 모습은 기특하다. 어찌 되었던 이방인으로서 너무 고생해온 둘, 특히 아다가 영원히 행복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아마도 아다는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 해리와 가까이 있지 못하더라도 늘 그를 품에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특히나 그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해리도 아다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결국 아다가 말한대로 - “그래서 넌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속해” - 된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부록처럼 실린 '옮긴이의 말'을 꼼꼼히 읽으며 작품의 내용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 개인의 가족사를 토대로 집필된 작품이라는 점을 알게되니 작품이 더 인상깊게 느껴졌다. 이렌 네미롭스키의 선집은, 하나하나 읽어나갈수록 작가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는 점도 참 좋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직접 읽은 뒤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