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픽사의 애니를 좋아한다. 어른이 된 후 내게 애니는 동심에 빠져들게 하는 매개체일 뿐, 오직 아이들만을 위한 유치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어 순수함이라던지, 판타지를 보고 설레는 마음이 거의 사라진 탓이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픽사의 애니를 보게 되었고 펑펑 울었다. 애니란 어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그때 픽사의 애니 덕에 그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덕분에 그 후 더이상 애니에 편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픽사의 스토리텔링을 엿 볼 수 있다니! 이 책의 표지를 열기 전부터 두근거렸다.
이 작법서가 참 친절하다고 느낀 부분은 픽사 애니 속 대사들을 하나씩 예로 들어 이해를 쉽게 해준다. 이 작법 포인트는 이런 대사로 쓰였다는 식이다. 가장 좋았던 장은 당신의 관객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3장 <교감>이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이야기에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뼈를 맞고 공감하며 시작한다. 교감의 장에서 유독 좋았던 것은 책상에 앉아서 '디즈니랜드'라는 장소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직접 그 장소에 가보라는 것. 이 조언에 상당히 깨달은 바가 많다. 확실히 상상하는 교감보다 직접 접하는 교감이 중요하다.
또, '보편적 주제를 다루어라.'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이것도 참 꿀팁이었다. 어차피 내 작품을 봐줄 사람은 관객일테니까. 그러나 피드백으로 너무 자신의 빛나는 창의성을 억누르지 말라는 부분은, 균형 잡힌 조언이어서 좋았다. 한쪽에만 균형이 쏠리지 않은 조언들이 좋았다.
'관객에게 훈계하듯 하지 말고 스토리의 메시지와 의미를 찾도록 내버려두라.'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좋은 작품도 작가가 결론을 내려준다기보단 이렇게 관객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것이 더 많았다. 진정한 교훈은 말이 아니라 느낌이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작법들이 너무 좋아서, 인생 작법서가 되었다. 얼마나 공감하면서 곱씹을 부분들이 많던지. 이 작법서는 작가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글을 잘 쓰는 방법보다 현실적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려준다. 평소 그런 대중성을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던 나로서는, 이 책을 보고 나서 대중적인 글을 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그저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하우가 많은 것이 좋았다. 자기 만족에 글을 써도 어차피 내 글을 봐줄 사람이 있어야 내 글도 존재 의의를 가지게 되는 거니까. 역시 픽사의 스토리텔링 작법서답다. 마지막에는 작법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평소의 행동방식도 알려주는 것이 든든했다. 글을 꾸준히, 잘 쓰기 위해 지켜나가야 할 삶의 패턴 같은 것까지 알려주다니. 그동안 많은 작법서를 봐왔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손에 꼽는 작법서다. 픽사의 애니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 작법서도 수많은 작법서들에 무뎌진 내 마음을 다시 한 번 움직인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