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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짜다!
줄무늬가래떡  2015/02/17 11:37
  • 가장 사소한 구원
  • 라종일.김현진
  • 12,420원 (10%690)
  • 2015-01-10
  • : 559

따로 옮겨 적어놓고 싶은 구절이 정말 많은 책이다. 그걸 다 옮겨 적다보면 책을 그대로 옮겨적는 듯한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며, 그 때 그 때 적어 두질 않았더니, 감상문 주제로 삼고싶은 마음에 드는 구

절의 정확한 페이지를 찾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다.”


정말로 인생은 개별 사건들의 나열이라기 보다는, 대처과정의 연속이란 말이 더 맞다고 느껴진다. 나

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건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구조적 차원에서부터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까

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일어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쨌거나 그 상처를 입고도 

살 방법을 찾아가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종일 선생은 글로 쓰인 것들은 더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김현진 작가에게 건넨다. 글로 쓰

는 것이 스스로 치료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김현진 작가가 최근 입은 상처들은, 책에는 사별, 갈등 

이런 건조한 단어 이상을 꺼낼 수 없을 만큼 깊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나였다면, 책 출판이고 뭐

고, 라종일 선생을 내 상처 응급치료를 위해서 이용했을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해 봐도, 실력도 있으

면서도 나와 잘 맞는 의사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어찌어찌 그런 분을 만난다 하더라도 현실적

으로 내가 치료세션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인 마당에, 웬만한 정신과 의사 이상으로 나의 

상처를 기꺼이 들어주려는,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그것을 나만의 치료기회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해 내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신통치 않은 악당이 쳐 놓은 신통치 않은 함정에 빠져 엄청난 비극을 일으키는 오셀로(p. 17)”이야

기를 하면서, 과연 이 함정에 스스로 가서 빠진 오셀로의 책임은 없는 것이냐고 묻는 라종일 선생 말씀

은, 정신과상담에서 집중하는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는 면이 있다. 내가 격는 문제를 이루는 것들 중에

서 내가 어찌 해 볼 수 있는 부분을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면 말이다. 작은 배로 거대한 고래사냥을 하

던 이야기도 생각난다.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한 나머지 눈앞의 진실을 알아 보지 못하고, 자신보다 훨

씬 작은 배에 사로잡히고 마는 고래. 그 고래 입장에서 가장 빠른 해결의 실마리는 나로부터 조금 떨어

져서 나를 지켜보는 것에 있을 것이다. 상담을 통해 내가 얻었던 금언, 자심반조 불취외상, 일체유심

조, 이런 말들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라종일 선생과의 상담이 정신과상담과 중요하게 다른 점이 있다. 정신과상담은 내가 주로 말을 하고, 

치료자는 주로 듣는다. 따라서 치료자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와 세상에 대한 식견을 구해 듣

는 중에 작은 깨달음을 쌓아가는 시간은 별로 없다. 이것은 어쩌면 의사의 사회적 경험이 아직 일천할 

확률도 높고, 또한 치료자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집중하게 되면 서로의 미숙한 면이 공명하여 치료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라종일 선생이라고 해서 무슨 신이 아니므로, 라종일 선생의 모든 견해가 무조건 옳고 빛나는 금강석

같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화려한 경력이라고 해서, 그가 남들이 도달하기 힘든 성숙

함에 이르렀다고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내게 라종일 선생의 이야기는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파악해야하는 지점이 많았고, 나는 그 중 아주 일부분만 실제로 곱씹어 보았을 뿐이다. 그 중 하나가, 

아이를 낳으려(혹은 낳지 않으려)하는 이유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을 먹

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라종일 선생과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도있게 (가상)대화를 나눠본 결

과, 일단은 모든 결정을 보류하기로 마음을 바꿔먹게 되었다. 그 상세한 과정은, 이 책을 읽고 난 나

의 첫 감상문(아래에 따로 써 놓았다.)이 되었고, 지금 이 글은 전혀 성격이 다른 두 번째 감상문이다. 그 글을 시작 할 때 나는 

반박과 항변을 하려는 마음이었는데, 글을 마칠 때 즈음에는 의견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부분, 혹은 잘 모

르겠는 부분마다 곱씹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많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바로 다음 문제는,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거나 장한 일을 추처올려 앞세우는 (p. 33-

34)”일에 대해서 자기탐닉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좋지않게 생각한다는 라종일 선생의 우려와, 

김현진 작가가 그 동안 자기 글을 통해서 어찌보면 남들은 숨기고 싶었을 자신의 솔직하게 드러내었고 

나는 그것을 보면서 작은 구원의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느꼈던 것 사이의 간극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작가라는 특수한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해 볼 기회가 될 것 같

다. 아마도 라종일 선생이 이 책의 출판을 끝까지 주저했던 이유와도 연결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자기를 솔직하게 보여 줌으로써 위로를 주는, 그런 김현진 작가같은 사람은 영영 만

나지 못해야 한다는 말인지, 아직 도통 모르겠는, 이런 상황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 될 것같다.


감동적인 구절이 있는 책은 많지만, 이 책은 진짜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말하길,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했더라도, 그 감동이 단순히 적당한 자극에 따른 눈물의 배설인지, 영화가 끝난 다음의 

내 삶에 작은 변화라도 가져오는 진짜 감동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진짜다. 감동 유발을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과 그 사람이 망가지지 않

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 사이에 오고 간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는 조금 바뀌

었다. 그리고 앞으로 반복해서 읽으며, 조금 더 바뀔 지점도 있을 것 같고, 다른 부분에서는 나도 정

확히 몰랐던 내 의견을 더 명확하게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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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짜다. 1 -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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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살기 힘든 세상에,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아이를 낳으라는 말이냐고 말했던 김

현진 작가에게 라종일 선생은 그런 생각이야말로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보는 시각 

아니냐고 물으며, 아이를 낳아 길러 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고, 김현진 

작가도 언젠가 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

이를 낳아 기른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아기가 부모를 키운

다, 차원이 다른 행복, 매일의 희망과 보람, 살아갈 용기, 한없는 희망, 아이가 없

었다면 자신의 일생은 가난하고 비참했을 것이라며 아이로 인하여 자신이 구원받

았다고 느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현진 작가는, 어느 정도 설복 되었다고 한다. 나 또

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은 드물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에게 보

통들 하는 말인, 이기적이다, 냉정하다, 늙어서 어떡하려고 그러냐, 부부관계 연결

고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느냐, 자손번식은 본능이

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과는 분명히 깊이가 다른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면, 저 사람들도 설마 저런 이유로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저 사람들이 아이를 

낳은(혹은 낳고자 하는) 이유를 명확하기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

각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데, 어느덧 결혼을 

하더니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여 드디어 아이를 낳았고, 얼마 전에 그 아이가 돌

이 되었다. 이 친구야 말로 라 선생만큼이나 진실한 마음으로 나에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 꼭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면 좋겠다고. 나는 이런 내용을 

말로만 전해 듣는 것이 아니다. 도움 받을 곳 없이 과중한 육아와 가사에 허덕이는 

친구를 위해서 자주 손을 빌려주는데, 그렇게도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아이를 보

고 그렇게도 행복해하는 친구를 본다. 그리고 아이는 정말로 사랑스럽고 좋다. 내 

친구를 닮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


이제 아이가 생긴 친구의 여러 고민들은 나보다 차원이 더 높아졌다.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해져야 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던 익숙한 숙제가, 아이로 인하여 양이 

더 많아지고 기한이 훨씬 앞당겨 져 버린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댁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이제까지는 자신이 항상 숙이며, 어느 정도 무시를 받는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갔었고, 귀찮아서라도 그런 것을 크게 문제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그런 대우를 받는 엄마를 바라 보며 자랄 것을 생각하

면, 나 혼자 감내하면 된다며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여길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

다. 엄마의 가오가 떨어진다는 그런 식이 아니라, 아이는 자신과 엄마를 어느 정도 

동일시 하고 있을 텐데, 그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받거나 혹은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될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아이가 어른을 성장 시킨다는 말을 내가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약간 간접경험은 있는 샘이다.


이렇게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로 인하여 얼마나 큰 구원과 행복이 찾아 오는 지, 그

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더 성숙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다 안다고 해도 말이다. 거

기에 더해, 내게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과중한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까지 가정을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도 과연 아이를 낳겠다

는 마음을 먹을 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실적인 

내 처지가 아이를 품을 만 하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가 더 있다. 그래, 아

이를 낳아, 나는 구원을 얻어 성장을 하고, 기쁨을 맛보고, 용기가 솟고, 심지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 했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말이다. 그 아이는 어떡하란 말이

야... 이런 마음이 있다. 뭐랄까, 정말 악마적으로 비유하자면, 내가 다단계 말단에

서 괴로우니, 내 숨통 트이게 만들기 위해서 누구 하나 물어오려 하는, 나는 그런 

기분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어쩌면 내가 아이로 인하여 구원을 얻어, 정말로 성숙한 사랑을 듬뿍 주는 그런 좋

은 부모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두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

다. 첫째로, 일단 그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

냐. 주위를 둘라. 자기 부모와 사이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이가 

어른을 자라게 하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어른의 성장이 충분한 수준까지 가

지는 않는 모양이라는 결론이 나올 밖에. 부모의 성장이 초보 단계에서 그치거

나, 한화 김승연 회장의 경우처럼 내 자식만을 도착적으로 챙기는, 성장이 아니라 

외려 퇴행을 보이는 경우를 숱하게 본다. 내가 과연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자라

나는 내 자녀가 나로 인하여 고민하고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성장을 해 낼 수 있겠

느냐 하는 점이 첫 우려다.


두 번째는, 일단 먼저 가정을 하자. 성숙이란 것이 완성이 없고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긴 하겠지만, 부모가 된 내가 아이의 성장 폭에 발 맞추어 충분한 성숙을 이루

어 낼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더라도 말이다. 좋은 부모를 만났다 하더라도 아

이가 평생 격어야 할 생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내가 격어 

보니, 생이란 정말 한 번 살아 볼 만 한 것이구나.’하는 지점이 있었어야, ‘어디, 너

도 한 번 살아 볼래?’하며 남에게 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 나는 이 정도

로 우울한 사람인 것이다. 도대체 너는, 그러면, 살면서 좋았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있었지요, 있었지만, 허덕허덕 살다가 간신히 붙잡은 작은 

위안들이었어요. 그런 것을 너도 한 번 맛보라며, 무려 이 세상에 태어나길 권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부모의 성숙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아이는, 나와는 다르

게 내면이 이렇게 황폐하게 자라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조그마하고 말

랑말랑한 아이가 그렇게 연약한 피부로 거친 세상에 부대끼며 친구를 만나야 하고 

사랑을 만나야 하는 여정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얘, 너도 아이를 

낳아보면 그간의 고생 고통 다 잊을 만큼 좋단다. 그때까지만 잘 참아봐.’이런 말을 

하면 된다며, 이 세상에 생명 하나를 내 놓을 용기는 없다. 물론 이미 태어난 다른 

많은 아이에게는 무자녀인 나라도 그런 의견을 전달해 줄 의사는 충분히 있다. ‘아

이를 낳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간증이 있단다. 너도 잘 한 번 고려해 보렴.’


이런 생각을 하면 역설적이게도 라 선생께서 말했던 효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세상에 내 놓은 자식이, 잘 자라나, 스스로 생의 보

람과 기쁨을 맛보며 ‘아, 이 세상에 태어나 정말 좋구나.’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그

것이야말로 부모로서 아이를 세상에 내 놓은 일이 부모 자신들에게뿐만 아니라, 아

이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되므로, 너무도 감사한 일

이 될 것 같다. 이런 점을 머리로는 이제 이해가 되었지만, 나에게 그런 일은 너무

나도 먼 별같이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나는 내 고통에 너무도 집중하여,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에 투사를 하고 있

는 것이겠지. 라 선생께서 책에서 들려 준 작은 배로 고래를 잡는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 자신의 고통에만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자신보다 작은 배에 사로잡혀 

버리는 고래. 이 고래는 그래도 라 선생께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지푸라기

처럼 붙들고 살고 있는 우리 김현진 작가에게 가장 사소한 구원의 손길이 되어주

어, 이 고래에게도 조금은 희망이 생긴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더 따져 올

라가 보면, 라 선생께 구원이 되어주었고 이 만큼 남에게 손길을 내 밀 수 있도록 

라 선생을 길러 준, 라 선생의 아이들께도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마음이

다. 자녀를 낳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항변과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는

데,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내릴 시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뭔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말을 어렵게 해서가 아니

라, 지금은 내가 말 해줘도 못 알아 듣는 상태인 것 같다.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읽

어보고 싶다.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나서 정말 답답한 마음일 때 다시 꺼내 읽어보

면, 그땐 또 그때 내게 필요한 만큼 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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