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살기 힘든 세상에,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아이를 낳으라는 말이냐고
말했던 김현진 작가에게 라종일 선생은 그런 생각이야말로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보는 시각 아니냐고 물으며, 아이를
낳아 길러 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고, 김현진 작가도 언젠가 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이를 낳아 기른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아기가 부모를 키운다, 차원이 다른 행복, 매일의 희망과 보람, 살아갈 용기,
한없는 희망, 아이가 없었다면 자신의 일생은 가난하고 비참했을 것이라며 아이로 인하여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느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현진 작가는, 어느 정도 설복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은 드물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에게 보통들 하는 말인, 이기적이다, 냉정하다, 늙어서 어떡하려고 그러냐, 부부관계 연결고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느냐, 자손번식은 본능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과는 분명히 깊이가 다른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 사람들도 설마 저런 이유로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저
사람들이 아이를 낳은(혹은 낳고자 하는) 이유를 명확하기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데, 어느덧
결혼을 하더니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여 드디어 아이를 낳았고, 얼마 전에 그 아이가 돌이 되었다. 이 친구야 말로 라 선생만큼이나 진실한 마음으로 나에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 꼭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면 좋겠다고. 나는 이런 내용을 말로만 전해 듣는 것이
아니다. 도움 받을 곳 없이 과중한 육아와 가사에 허덕이는 친구를 위해서 자주 손을 빌려주는데, 그렇게도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아이를 보고 그렇게도 행복해하는 친구를
본다. 그리고 아이는 정말로 사랑스럽고 좋다. 내 친구를
닮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
이제 아이가 생긴 친구의 여러 고민들은 나보다 차원이 더 높아졌다.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해져야 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던 익숙한 숙제가,
아이로 인하여 양이 더 많아지고 기한이 훨씬 앞당겨 져 버린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댁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이제까지는 자신이 항상 숙이며, 어느
정도 무시를 받는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갔었고, 귀찮아서라도 그런 것을 크게 문제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그런 대우를 받는 엄마를 바라 보며 자랄 것을
생각하면, 나 혼자 감내하면 된다며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여길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가오가 떨어진다는 그런 식이 아니라, 아이는 자신과 엄마를
어느 정도 동일시 하고 있을 텐데, 그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받거나 혹은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될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가 어른을 성장 시킨다는 말을 내가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약간 간접경험은 있는 샘이다.
이렇게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로 인하여 얼마나 큰 구원과 행복이 찾아
오는 지, 그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더 성숙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다 안다고 해도 말이다. 거기에 더해, 내게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과중한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까지 가정을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도 과연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을 먹을 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실적인 내 처지가 아이를 품을 만 하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가 더 있다. 그래, 아이를 낳아, 나는 구원을 얻어 성장을 하고, 기쁨을 맛보고, 용기가 솟고, 심지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 했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말이다. 그 아이는 어떡하란 말이야... 이런 마음이 있다. 뭐랄까, 정말 악마적으로 비유하자면, 내가 다단계 말단에서 괴로우니, 내 숨통 트이게 만들기 위해서 누구 하나
물어오려 하는, 나는 그런 기분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어쩌면 내가 아이로 인하여 구원을 얻어, 정말로 성숙한 사랑을 듬뿍
주는 그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두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첫째로, 일단 그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주위를 둘라. 자기 부모와 사이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이가 어른을
자라게 하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어른의 성장이 충분한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 모양이라는 결론이
나올 밖에. 부모의 성장이 초보 단계에서 그치거나, 한화
김승연 회장의 경우처럼 내 자식만을 도착적으로 챙기는, 성장이 아니라 외려 퇴행을 보이는 경우를 숱하게
본다. 내가 과연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자라나는 내 자녀가
나로 인하여 고민하고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성장을 해 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첫 우려다.
두 번째는, 일단 먼저 가정을 하자.
성숙이란 것이 완성이 없고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긴 하겠지만, 부모가 된 내가 아이의 성장
폭에 발 맞추어 충분한 성숙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더라도 말이다. 좋은 부모를 만났다 하더라도 아이가 평생 격어야 할 생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내가 격어 보니,
생이란 정말 한 번 살아 볼 만 한 것이구나.’하는 지점이 있었어야, ‘어디, 너도 한 번 살아 볼래?’하며
남에게 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 나는 이 정도로
우울한 사람인 것이다. 도대체 너는, 그러면, 살면서 좋았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있었지요, 있었지만, 허덕허덕 살다가 간신히 붙잡은 작은 위안들이었어요. 그런 것을 너도 한 번 맛보라며, 무려 이 세상에 태어나길 권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부모의 성숙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내면이 이렇게 황폐하게 자라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조그마하고 말랑말랑한 아이가 그렇게 연약한 피부로 거친
세상에 부대끼며 친구를 만나야 하고 사랑을 만나야 하는 여정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얘, 너도 아이를 낳아보면 그간의 고생 고통 다 잊을 만큼 좋단다. 그때까지만 잘 참아봐.’이런 말을 하면 된다며, 이 세상에 생명 하나를 내 놓을 용기는 없다. 물론 이미 태어난 다른 많은
아이에게는 무자녀인 나라도 그런 의견을 전달해 줄 의사는 충분히 있다. ‘아이를 낳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간증이 있단다. 너도 잘 한 번 고려해 보렴.’
이런 생각을 하면 역설적이게도 라 선생께서 말했던 효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세상에 내 놓은 자식이, 잘 자라나, 스스로 생의 보람과 기쁨을 맛보며 ‘아, 이 세상에 태어나 정말 좋구나.’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로서 아이를 세상에 내 놓은 일이 부모 자신들에게뿐만 아니라,
아이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되므로, 너무도 감사한 일이 될
것 같다. 이런 점을 머리로는 이제 이해가 되었지만, 나에게
그런 일은 너무나도 먼 별같이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나는 내 고통에 너무도 집중하여,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에
투사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라 선생께서 책에서 들려 준 작은 배로 고래를 잡는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 자신의 고통에만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자신보다 작은 배에 사로잡혀
버리는 고래. 이 고래는 그래도 라 선생께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지푸라기처럼 붙들고 살고 있는 우리 김현진 작가에게 가장 사소한 구원의 손길이 되어주어, 이 고래에게도
조금은 희망이 생긴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더 따져 올라가 보면, 라 선생께 구원이 되어주었고 이 만큼 남에게 손길을 내 밀 수 있도록 라 선생을 길러 준, 라 선생의 아이들께도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마음이다. 자녀를
낳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항변과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내릴 시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뭔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말을 어렵게 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내가 말 해줘도 못 알아 듣는
상태인 것 같다.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나서 정말 답답한 마음일 때 다시 꺼내 읽어보면, 그땐 또 그때 내게 필요한 만큼 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