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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anduls님의 서재
  •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
  • 안민영
  • 15,300원 (10%850)
  • 2023-07-21
  • : 765

당신의 인생에 던져진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어디 야구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뿐이겠는가. 삶과 죽음, 선과 악, 남과 북, 이상과 현실... 경계선에 놓여 있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늘 우리는 어느 한 쪽 편에 서 있고 싶어 한다. 혹은 그러기를 강요당했을지도. 당장 나는 비장하고도 숭고하게 이 서평을 이상적으로 쓰려고 한 지금 이 순간에 잠시 빨래를 널고 왔어야 했다.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그렇다고 그 살림살이를 남루한 현실이라고 말할 순 없다. 나에게는 내일의 화려한 외출을 위한 고귀한 현실인셈.

 

특히, 나와 같은 미알못(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세상을 다시보게 하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작년엔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멋진 아빠인 척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아이들은 아빠 덕분에(?) 걷기 운동만 열심히 하다 온 듯하다. 그림들에 대해선 내가 블라블라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림이 무슨 의미인지 아무리 봐도 알지 못했기 때문. 아! 하나 알긴 했다. 물방울 그림. 그건 물방울을 그린 그림이야, 라고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다.

 

안민영 작가님의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는 책의 부제처럼 ‘경계의 화가들을 찾아’나선 작가의 발자취다.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야구가 떠올랐다. 어라? 그럼 이 화가들은 보더라인에 걸쳐있는 사람들이겠구만…. 그럼 스트라이크야 볼이야?

 

그러려니 하고, 십수 페이지를 넘겼다. 뭐지? 책 속의 그림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네? 내용은 둘째 치고… 근데 되게 고상한 내용인 것 같은데… 글이 이렇게 쉽게 읽혀도 되는 거야? 당황스러웠지만, 한 15분도 안되어 읽은 첫 화가 ‘이쾌대’의 그림들에 담긴 수많은 의미가 단박에 내 머릿속으로 박혀 들어왔다. 대박. 이건 마치 수년전 카카오톡의 라이언 이모티콘을 처음 봤을 때의 신선함과도 비슷했다. 지금 내 옆의 선선한 선풍기 바람처럼.

 

그랬다. 그림을 볼 때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밖을 봐야 하는구나. 그래서 두 번째 화가 ‘임군홍’이 그린 그림에는 3명을 그렸는데도 왜 5명이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를 알게 되는구나. 이 저자 또한 이 글을 쓰면서 독자들과 만나려고 책 밖에서 우리를 이끌어 가고 있구나. 소설인지, 일기인지, 미술인지, 역사인지 애매한 경계 속에서 그것들을 넘나들고 있구나.

 

무엇이면 어떠랴. 경계란 그런 것이다. 그대의 인생이 스트라이크이고 싶은가 볼이고 싶은가. 생각해 보라.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타자라면 볼 - 그것을 반길 것이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원하는 볼카운트의 반복된 연속선 상에서 결국 9회말 경기 종료 후 남는 것은 승패뿐이라는 것을. 야구를 진정 즐기는 사람은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대로, 볼은 볼대로 그 결따라 춤추는 하얀 실밥의 공, 그것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길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또 달랐을 터. 일제강점기를 지나왔거나 분단을 온 몸으로 겪었던 당시의 예술인들은, 그 경계선 자체가 피말리는 생사의 기로였음을. 저자는 그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그러나 매우 담담하게 한땀 한땀 속삭여 주는 듯하다. 이거 반칙 아니야? 살짝 쳤는데 홈런 같은,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책을 반 넘게 읽게 만드는 이 술술 읽히는 글 솜씨는?

 

결코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책 뒤편에 보면 참고문헌만 빽빽하게 다섯 쪽이다. 각주는 156개. 아니 미술이야기라면서? 이 정도 분량이면 논문인데... 논문같은데 논문이 아니다. 카테고리부터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구만. 결론. 미술을 모르는 내가 미술을 알게 되었다. 이로서 나는 삶의 경계선 하나를 넘나든 셈.

 

‘남과 북 어느 역사에도 기록되지 못한’ 변월룡, 마치 나처럼(?) ‘생활의 포로된 평범한 인간’으로 되고 만 - 그러나 또 결코 그렇지 않은 박경란, ‘한반도의 다른 공간에서 강제 이주의 처절한 역사를’ 그린 신순남, ‘그의 그림을 보면 눈물이 나는’ 전화황, 인생에 1도 도움 안 되는 사회인 야구를 팔을 다쳐가면서까지 하고 있는 나처럼, ‘쌀 살 돈도 없는데’ 골동품 가게에서 사온 두꺼비 연적이나 그리고 앉아있는(!) 김용준, 자식을 만나고픈 순수한 부모의 마음이 무기징역의 결과가 된 이응노 - 그러나 구형 직후 환하게 웃는 얼굴이 새겨진 190쪽 그의 사진에, 나의 고정관념과 수많은 경계가 단 한컷의 사진으로 확 무너져 버렸다. 나는 자유인이다!

 

박정희 독재시대를 넘어,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도미야마 다에코’의 그림에 이르니 어느덧 나는 저자가 인도한 미술과 한국사의 양극단의 롤러코스터 같은 콜라보레이션에 홀려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어떤 그림을 봐도, 어? 저 그림은 이런 뜻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마저 생겼다. 두 시간 만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주 천천히 그림 보는 방법을 알려주듯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은, 그림 또한 사람이 그리는 것이기에, 거기에 담긴 무수한 사연을, 마치 탐정처럼, 마치 탐험가처럼, 독자와 함께 여행하듯 그림을, 한국 근현대사를 마치 처음 보는 꽃잎을 보듯 천천히 탐색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계를 허물고, 내 친구들로 하여금 스스로 지갑을 열어 카드를 꺼내게 하거나, 아니면 카카오페이를 열어 이 책을 구매하도록 친구들에게 권할 작정이다. 혹시 아는가? 경계선상의 공은 스트라이크도 되고, 볼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적으로 구매한 이 책이 자본주의의 경계를 허무는 단초가 될지?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야구처럼.

 

충북 괴산에 있는 <숲속작은책방>이라는 서점을 최근 우연한 기회에 다녀왔다. 그 한켠에 서점 주인께서 정성스럽게 조각하였을 법한(주문 제작한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경계인의 삶’이 있었다. 알**에서 책을 주문하고 보니, 이 책이 그 곳 한 켠에 놓여있다면, 좋겠다, 는 생각을, 책을 덮고 나서, 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사실상 모두 경계인의 삶이니까. 현실 속에서 이상을 꿈꾸고 그 이상을 위해 현실이 뒷받쳐주는…. 안민영 작가님의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는 그렇게 그림과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 서사를, 나의 소심한 일상에 들이 부으며 그 일상 전체를 슬프도록 아름다운 한편의 그림으로 다시 탄생하게 한다.

 

오~ 경계여! 스트라이크 아웃! - 이 아니고, 스트라이크 볼!!!^^

 

* 내돈내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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