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제공받았습니다.
하움
글을 쓰기에 앞서 고백하지만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다. 더욱이 여느 종교를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닌 모두의 종교의 형성 과정과 특징(또는 역사성) 등을 들여보다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 책 역시 나름의 내용에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깃든 감상은 "잘 모르겠다" 라는 막막함 뿐이다.
그럴것이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의 옛 기록과 그 가치관의 재조명이다.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늘날의 성경과 종교의 가르침의 주된 내용을 알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어디까지나 막연한 지식에 머물러 있어, 애초에 다수와 소수의 집단의 가르침 등을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은 본래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을 접할 수 있는 고대 문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위 기록은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는 인용되지 못했는가? 이는 어쩌면 이후 기독교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는 준비(구원)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중심으로 죄를 씻어내고 다시끔 속죄와 구원을 구하는 방향성으로 점차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든다. 실제로 따지자면 오늘날 위의 문헌에 가까운 종교적 믿음은 유대교의 '마지막 날'과 가깝다.
죄인들이 그 땅을 차지했으므로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 (...)
이에 주된 내용 또한 이집트와 예루살렘, 아시리아에 분포되어있는 '영광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탄압하는 세력들을 두고 대적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였다. 마치 '모세의 이야기'에서 마주한 유명한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들은 스스로의 원한을 이 책의 여러 구절을 통해서 오롯이 드러내고, 이후 이들의 고행은 참된 존재에 의하여 재정립되고 구원받으며, 보상받는 것이 내가 이해한 위의 문헌의 핵심이라는 감상을 받았다.
결국 이 내용은 보기에 따라, 저주와 복수의 문장들이다. 물론 그 원류에 가까운 내용이였기에, 이에 따른 나름의 역사성이 엿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이후 이것들의 가치가 희석되고 또 외면받는 이유 또한 이해되기에 이른다. 오늘날의 교회의 가치는 다른 것에 대한 포용과 사랑이다. 이에 대립과 적의 소멸을 바라는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그 사명의 완수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났을 것이다.
이집트의 통치자들아. 그날들에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의 날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
각설하고 요즘 중동의 상황을 살펴보면 위 증오와 복수의 가치관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이 다툼이 되고, 상대방을 증오하거나 죽이는 이유가 되면서 일어나는 혼란과 파괴... 이에 당당히 '신의 영광' 을 주장하는 여느 세력과 그의 지도자의 믿음 가운데, 어쩌면 이 오랜 가치관이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이어져 온 이유에도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핍박과 고난, 또는 증오에 대한 대가로 '복수'를 꼽은 이 문헌의 본질이 때때로 인간의 내면 가운데 자리잡은 어느 감정과 크게 공명하는 이유가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든다. 실제로 여느 종교들은 그러한 마음을 내려놓거나 극복하라고 하지만...반대로 그보다 더 오랜 가치관 중에는 오늘날에도 불멸의 정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존재한다. '눈에는 눈' 이에 세상의 정의란? 어쩌면 그 오랜 세상의 인식 등에 비교해 그리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