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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츠님의 서재
  • 나무와 강
  • 에런 베커
  • 13,500원 (10%750)
  • 2024-12-11
  • : 650

예전부터 나무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 존재였다. 가공하기 쉬운 관계로 각종 가구가 되어주거나 건설재료가 되어주고 오래 타는 성질 때문에 가정집의 땔감이 되어주기도 하고 심지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나 속 껍질은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조상들의 절박한 비상식량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한국엔 국가인 애국가에도 '남산위에 저 소나무' 라는 구절이 들어 있을 정도로, 나무를 상징적 의미로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예를 들어 석송령과 같이 한국엔 오랜 시간 속에서 존재했다는 '역사'를 지닌 나무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이른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이 결합된 믿음 즉 '신령'이라

불리우는 믿음을 나무에게 부여하거나 그 사실 확인이 모호한 전설을 나무에 부여하여 더욱 특별함을 더한다.

그렇기에 서양에서 그려진 이 책의 이야기를 마주라면서... 아니 전혀 문화와 생활을 달리하던 '나'에게 있어서도 이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큰 인상을 받는다. 물론 오랜 나무를 마주하여 나는 그것에 대하여 큰 경외의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물론 여느 신화와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세계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나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인본주의적 가치관 아래 인간 본연이 만들어낸 기념물과 의미가 더욱 큰 감명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과 증명이 사라져감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인간의 영향과는 무심하게 그 나무가 여전히 서 있다는 것은 문득 존재함이나 연속됨에 대한 허무함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자연의 일부로서 오래도록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아는 그 존재만으로도 반면 인간의 빠름과 변화가 오롯이 영광과 발전... 또는 긍정의 의미 만이 아닌 그저 존재하여야 마땅한 것을 빼앗아 이용 했을 뿐인 '이기'와 '폭주'에 가까운 것이 아니였을지에 대하여 조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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