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나는 문득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특히 주인공인 남학생이 오래도록 집과 학교 밖에 오르는 모범생 같은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한 순간 우연히 눈에 들어온 상대에게 이성적 끌림을 느끼게 되었을때! 과연 나는 그 주인공의 내적 감정을 시작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혹여 그것은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짧은 격렬함일까? 아니면 하늘에서 눈꽃이 내리는 것과 같이 느리지만 영원할 것 같은 황홀함일까? 더욱이 경험없는 그가 나름의 사랑의 감정을 완성시킬때, 과연 상대를 마주하며 어떠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 이처럼 위의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 스스로가 어느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흔히) 그들이 처한 환경과 경험 등에 기댄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대상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이미지 등에 빗대어 비유하거나 또는 은유적으로 둘러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나는 보다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알게 모르게 '낭만주의의 문학사조'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을 살다보면 의외로 위의 '아름다운 문장의 포장'은 사랑의 시작과 완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상대에게 나의 진실됨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볼 때, 나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사조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 소설의 이야기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사랑의 본질'에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소설에 표현되는 여러 문장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해당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문장들의 난해함에 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줄거리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짧지만 분명한 소설의 흐름과는 달리, 그 와중 주인공이 느낀 감정에 대한 저자의 표현... 그야말로 주인공이 오늘날까지 쌓아온 지성과 상식,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또 다른 감정이 개입되고 또 지배 당할때.,' 이른바 주인공의 내면에 피어나는 감정의 모습은 흔히 '첫사랑의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다른 소설들과 달랐으며, 특히 지금껏 종교인(사제)로서의 정체성과 점차 거부할 수 없는 감정 사이에서의 혼란에 대한 묘사 등이 보다 '솔직하기에'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기 껄끄러웠다.
다만 이미 21세기의 '막장 스토리에' 면역이 된 나에게 있어선 이전 '원초적 본능'에 해당하는 위의 이야기 따위는그다지 파격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해당 글이 지어진 1918년에는 아직 카톨릭이 지니는 종교적 가치와 함께, 낭만주의적 가치에 입각한 이성과 합리성이 사회의 미덕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에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한 사제의 이야기와 당시 사회 전반에 뿌리깊은 도시노동자의 (저임금과 착취 등의) 가혹한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 저자의 '사실적인' 문학적 색채는 흔히 파격을 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단점.... 이 책의 표현법을 빌리자면 '이교도적 결함'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마치 '거울과 같은 역활'을 해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감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