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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츠님의 서재
  • 할복
  • 리샤르 콜라스
  • 17,100원 (10%950)
  • 2024-08-15
  • : 22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서 '한반도 최악의 세대' 라는 주제가 있다. 실제로 1580년에 한반도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에 이르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야 했으니, 이에 오롯이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백성의 입장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물론 위와 같은 글을 써 내려간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소설 또한 당시, 어느 시대와 운명에 휘둘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인의 입장에 있어서, 제목 그대로 할복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다른 나라의 옛(자살)의식만이 아닌, 과거 군국주의와 식민주의 등과 일맥 상통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사상적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만약 소설의 내용이 단순히 '자포니즘'과 '일본의 내적 미학?'을 이해하게 된 이방인에 대한 것이였다면! 나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먼저 책을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소설은 일본에 대한 문화나 내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 (크게)인물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아간다. 다만 그 인물이 과거 동.서양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세계2차대전을 거치며, 왜 이방인이 되고 말았는가? 그리고 어째서 머나먼 일본에서 '시대의 불행을 끌어안고 할복이라는 수단으로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하고 말았는가?' 에 대한 나름의 서사를 드러냄으로서, 결국 독자들에게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가혹한 운명 등에 상처입은 이 이방인에 대한 동정의 마음을 품게 만든다.

에밀의 인생은 냉정한 신들이 인간에게 안겨준 잔인한 운명을 상징했다. 에밀의 인생은 가련한 인간의 운명을 계속해서 가차 없이 망가뜨리는 신들의 장난으로 얼룩졌던 것이다.

30쪽

각설하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크게 세번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 죽음의 형태에서 최소한 죽음이 타인에게 강제 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와 참회의 수단으로서, 행하여진 것은 일본인 무관이자 의사였던 겐소쿠가 유일하다. ​ 물론 제3자의 입장에서 겐소쿠는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자이자 심지어 731부대의 마루타 생체실험을 자행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전범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아직10대의 어린아이였던 주인공에게 있어 이 일본인은 미지의 동방의 나라의 문화를 알려준 인물이자, 이후 그에게 명예의 의미와 맹세의 멍에를 지운 존재라는 점에 있어서, 어쩌면 주인공의 인격을 만들어 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일 수 있다.

일본 장교였던 겐소쿠는 자살하는 순간까지 기품이 있었습니다. 그런 겐소쿠, 그리고 헌신과 초연함이 검으로 만들어진 문명을 가진 머나먼 나라 일본에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158쪽

그러나 크게 주인공의 인격을 만들어낸 가치 중 제일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 혐오'이다. 물론 그 혐오의 감정 가운데 주인공의 책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나치 정권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에서 부역하는 아버지를 두었고, 그저 독일 사회가 부르짖는 '질서'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유대인 친구를 대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립하여, 주변의 모든 진면모를 알게 되었을때, 과연 주인공의 입장에서 어떠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그는 부끄러움,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분노...그러나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복잡한 마음을 품고 이방인이 되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조국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그저 다시끔 주어진 프랑스인이라는 배를 타고 과거 그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동방의 나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전쟁은 그의 깊은 상처를 들쑤신다.

한국전쟁... 6.25를 직접 마주한 주인공. 종군기자로서 그의 눈에 들어 온 참상은 이미 과거 스스로가 겪은 경험과 뒤섞여 또 다른 상처를 준다. 더욱이 겨우 발견해 낸 삶의 이유이자 사랑인 한국인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이후 그는 이제 그의 내면에 남은 마지막 인격의 파편을 끄집어내, 그 형태로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할복의 의미는 여느 일본인의 전통적 사상과 가치관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녹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개인의 입장에선 더 없는 절망을 맛보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으면서,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속죄의 마음을 과거 그가 이해한 가장 고결한 형태로 마무리 하지 않았나 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미 언급했듯이 그 수 많은 속죄의 마음에서 주인공 스스로가 행한 잘못은 겐소쿠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뿐이다. 그는 전쟁의 시대 독일인으로서, 전범 부역자의 아들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버지로서 시대의 부조리함을 끌어안고 죽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결국 이를 이해한 사람들에게 온전히 판단을 맡기고 있다. 에밀 몽루아... 아니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 라는 인물은 왜 할복을 선택했나?

이에 나는 그 수단에는 나름의 의문을 품지만, 적어도 죽음을 선택한 이유 만큼은 크게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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