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역사를 떠올려 개인적으로 오경석의 이름은 상당히 낮선 것이였다. 그러나 이 (소설)책을 통해 바라본 인물의 행적은 그 나름대로 전통적 근세국가에서 탈피한 근대국가의 틀을 추구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 개혁파의 선구자로서, 결국 내용을 마주하는 독자들에게 '어째서 조선은 변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에 대한 감상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생각이 된다.
특히 조선의 신분 계급에 있어 '중인'에 해당하는 오경석에게 나라의 변화를 꿈꾸게 한 책(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은 크게 북학의와 해국도지로 나눌 수 있다. 더욱이 그가 역관의 직을 수행하며, 청나라가 태평천국의 난과 아편전쟁을 통해 나라가 분열될뿐 만이 아니라, 서양세력에게 패배하여 수도(베이징)까지 함락당하는 현실을 목격함으로서, 이에 단순히 오랜 중화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동시에 더욱이 정체되고 낙후된 '조선은 과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질문을 품고 또 그에 대한 강한 해답을 갈구하는 인물이 되어가는 (이야기의) 흐름 등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인상깊은 것이였다.
(...) 외부와의 교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자각할 것이네. (...) 자각은 변화의 요구를 불러 일으킬 것이고, 변화의 요구는 새로운 세상을 창출하는 동력 될 걸세.
309쪽
결과적으로 그는 (소설의 이야기에 비추어) 조선의 변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화'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새롭게 대원군이 실세로 떠오르자, 나름 정통이 아닌 방계로서 부조리함을 경험한 그에게 큰 기대감을 품었으나, 안타깝게도 역사를 돌아보았을때, 대원군 이하응의 국정은 이후 쇄국으로 나아가기에, 결국 오경석은 그 스스로가 개화를 위해 오늘날 보기에 상당히 무모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실제로 비교적 세계정세를 파악했던 오경석이 개화를 주장했던 때는 1871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을때와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의 (협상의) 실무자로서 활약했을 때이다. 이때 대원군은 협상을 뒤집고 일본과의 결전을 지시하였으나, 정작 오경석은 조약을 통해 (다시)조선 개국의 문을 열었다. 물론 이후 벌어지는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사실을 이유로 이 주인공의 선택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날 역사에서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일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의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 변화는 필수라는 믿음을 가진 당시의 인물에게 있어서, 큰 마찰을 피하고 최대한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화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사상적 믿음'과 행동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 정의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조선의 변화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 이후 그의 사상적 계승자에 해당하는 김옥균의 갑신정변과 같이 급진 개화파가 행동하게 된 이유와 실패 등을 떠올려보게 되면... 결국 조선은 비록 느리고 낙후되었지만, 그 내부적 조직만큼은 강인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의 10년에 이 나라의 명운이 걸렸네. 일본과 통교하자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잖나. (...) 저들 나라에 유학생을 보내서 기술을 배워오는거야. 우리도 광산을 개발하여 산업을 일으키고 저들의 기차와 회륜선 전신도 도입해야지(...)
553쪽
그러나 이후 조선의 변화는 개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많은 '개화의 가치를 인식한 인물들'에 의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진행되어갔다. 덕분에 역사 속에서 보여지듯 조선은 분명 개화를 통해 많은 것을 도입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오경석이 꿈꾸었던 자주적인 강국을 이룬다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하여 한반도의 역사는 수 많은 상처와 비극이 되풀이 되고, 심지어 그 상처는 오늘날에도 분열과 왜곡을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한계 때문일까?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오경석을 포함하여 당시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을 인식한 개화의 위인들은 비교적 다른 위인들과 비교해 후대의 인식이 저조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끔 개화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인물과 함께, 당연하게 저항과 독립으로 이어지는 수 많은 위인들의 가치를 통틀어, 더욱 확고한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준점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늘날 보여지는 대한민국의 대중적 역사인식과 사실조차도 위협당하고 분열되는 세상 속에서, 단순히 내가 공부하고 알아가는 당연한 역사가 당연히 후대에도 보존되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진 지금... 결국 앞으로 보다 바른 역사의 사실이 이어지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부터 스스로의 중심을 삼을 역사의 기준을 세우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생각해보아도 오경석은 분명 남들보다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역사에 비추어 나라의 위기를 깨달았으며, 그에 따른 해결점을 제시하며 행동한 점에 있어서 적어도 스스로의 삶보다 나라를 위해 행동한 인물이 틀림 없다고 생각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