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소설을 접하는 제일의 이유에는 먼저 이야기가 드러내는 주제에 따라 다양한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위대한 캐츠비에서 보여지는 1922년의 뉴욕, 셜록홈즈 시리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거리, 심지어 작가의 창의성이 더해진 돌킨의 판타지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책장에서 꺼내 펼쳐 읽기만 한다면, 책은 충실한 안내자로서 독자들을 저마다의 시대로 이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주제인 한반도의 문학 속에서, 특히 구성중 하나인 '음식'의 역활 또한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나 '더는 옛 시대적 한계에 따른 (여러)상황을 겪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민족으로서 공유하는 문화와 시대적 공감대를 통해 현실과 창작 사이의 연결점이 되어준다.
예를 들어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김 첨지가 사들고 온 설렁탕 한 그릇은 그 시대 뿐만이 아닌 오늘날에도 거리 곳곳을 쏘다니다 들를 수 있는 대표적인 대중음식에 속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현대 한국인의 입맛 상당부분이 세계화에 맞추어 변화했다 하여도 과거 된장찌개와 국간장으로 맛을 낸 미역국의 맛을 알지 못할 정도로 한반도 식문화는 단절되기는 커녕,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 대물림 솜씨로 이어 온 다양한 김치들이 삼한사온의 날씨덕에 유기산과 탄산 등이 잘 형성되어 혀를 톡 쏠만큼 맛있게 익었다. (...) 발효미를 형성하는 과정과 (...) 메주가 볏짚 속에서 건강에 좋은 곰팡이를 피우며 뜨는 과정이 [미방]에 묘사되어 있다.
88쪽
그러나 이 책이 드러내는 많은 작품 속의 식문화는 조금 그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미망'이라는 소설에 표현된 변씨만두와 토지에서 표현된 꽁보리밥에 강냉이죽은 대부분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과거 사람들의 시대적 상황과 애환을 드러내는 음식이다. 때문에 저자는 위와 같은 (작품 속)음식을 통하여 과거 한민족이 어떠한 식생활을 이어왔는가? 그리고 이후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저다마의 신분과 환경 또는 대중 사이에 공유하는 욕망(또는 소망)을 통해, 때때로 사람은 식사에 있어서 허기를 달래는것 뿐 만이 아닌, 스스로에게 있어 특별한 맛' 을 추구하고자 하는 갈망도 컸음을 드러낸다.
예나 지금이나 "못먹서서 서럽다"는 감정은 그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잔인함을 지니고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스스로의 이유를 들어 가난한 식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수 많은 문학들이 표현한 가난은 그들 등장인물에 한정된 환경이 아닌, 거의 대중의 영역에서 공유되는 그 시대의 한계가 여실이 표현된다. 때문에 한민족이 공유하는 애환... 아니 '한' 가운데는 위와 같은 한껏 먹지 못한 사실 또한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책의 제목이 문학이 차린 밥상이라지만, 정작 독자의 입장에 서서 내가 발견한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먹었던 생소하고도 익숙한 맛'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에 '맛이 스며든 음식들' 그 속에 녹아든 것은 농촌마을 식단의 짠지와 조림처럼 단순하지만 그 영역에서 최대한의 다채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옛 사람들의 정서였다.
설움이 무엇이며 추위가 무엇인가. 그런 것쯤이야 아이들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이순간이 무한하게 행복할 뿐이다. 어미는 석이 몫의 시래기국을 먼저 떠서 밀어 준다.
토지2부 2권 3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