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루츠님의 서재
  • 라비헴 폴리스 2049
  • 박애진
  • 15,120원 (10%840)
  • 2024-05-27
  • : 1,46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를 무대로 그려낸 작품세계.

즉 SF라 불리우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 각각의 이야기들이 드러내는 미래기술과 무한한? 긍정적 가능성 등에 대한 로망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표적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려보게 되면, 그 영상 이모저모에 드러난 첨단 문명의 이기가 실제 21세기 오늘날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미 익숙하거나 또는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을 공유하게 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또는 '미래의 비전을 영상화 한' 영화로서 가장 모험적인 SF의 가치를 드러낸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위의 가치관으로 생각해보았을때, 과거 한국형SF를 재해석한 이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흔히 '미래에 대한 로망' 보다는 반대로 미래를 현실로 이끌고 내려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하늘을 나는 에어카가 등장하고 자동화 된 편의시스템이 인간의 삶 여러곳에 침투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소설의)이야기가 풀어내고자 하는 것은 최첨단의 기계문명이 들어서 있음에도 변치 않는 낙후된 장소가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이후 먼 미래의 정부와 정치 또한 이러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며, 저마다의 이익과 성취감을 위해 반대로 약한 존재를 이용하는점 등 분명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변화를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문화의 그림자를 더욱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비추어진다.

기본적인 집기와 도구만 줘도 여기에 집을 일구고, 가게를 열어 상권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지, (...) 하다못해 짓다 만 하수구 공사를 끝내주기만 해도 사망률을 낮출 수 있네, (...) 하지만 꼼짝을 하지 않지. 그들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양 숨죽이고 살길, 안락하고 편안한 자기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

33쪽

특히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낙후된 도시 '라비헴'에서 근무하는 경관이기에, 더더욱 권력자와 시민 사이의 경계에서, 도시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진행되는 여러 사건들을 마주하는 경관으로서, 이들은 정작 문제의 예방은 커녕 이미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도 곧 여러 한계를 맞이한다. 질병, 범죄, 마약, 그리고 차마 나열하기 힘든 인권유린형 범죄에 이르기까지... 이에 마치 슬럼가처럼 인간의 삶과 환경이 쇠퇴한 곳에서, 현실적으로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된 이들이 바로 경찰관으로서 일하는 그들이다.

현실을 겪으며 생겨나는 무력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무력감과는 다르게 무대 '라마스 지구에는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진다. 그야말로 약자로서 스스로의 환경과 대우에 분노를 표하고 변화와 지원을 요구하는 라마스의 대중들, 그러나 반대로 위험하고 더러운 라마스를 해체하여 국제적 규모에 걸맞는 공연장을 짓는 것이 결국 라비햄과 해당 시민들에게 더욱 큰 복지와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시장과 권력자들, 그리고 오랜 역사의 흐름에서볼 수 있듯이 이러한 양극간의 이해관계와 다툼 와중에서, 결국 일어나는 일은 진행되는 음모와, 누군가의 희생... 그리고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감추어지는 무수한 진실과 실종된 정의이다.

때문에 '나' 는 이 소설의 주제를 통하여, 때때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나 '장소'가 만들어질때, 그리고 그 인식이 해소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하고 또 무감각해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시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겼다. 분명 쇠락한 라마스 지구는 질병과 범죄의 온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권력이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려울 정도가 된 이유에는 오롯이 라마스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빈민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배급되는 식권을 훔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게 된 원인은 단순히 그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일반인과 다르게 때문일까?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라비헴 시민들에게는 공연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라비헴의 관광수익까지 늘려주니 일석이조입니다. (...) 자기 삶을 스스로 망친 자들이 왜 우리에게 생존권을 요구합니까? 왜 우리가 피해를 보아야 합니까? (...)

105쪽

이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시청은 이러한 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최선의 행정력을 동원해야 했다. 그저 단순히 소수의 권력자나 선한 사람들의 자비에 기댄 후원금을 모집하거나, 하루하루 연명할 빵을 배급하는 것이 아닌! 그리고 결국 골칫덩이를 덜어내기 위해 '무법'과 '폭력' '나태'의 단어를 달아 그들을 강제로 내버리는 것이 아닌! 더욱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분노한 시민들을 경찰의 방패벽으로 몰아 사망하한 그 불운한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에... 적어도 시를 대표하는 권력자이자 행정기관으로서 상식적인 행동은 그들을 품고 다시 시의 일원으로서 일어서기까지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는 존재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미친다.

적어도 서로 편을 갈라 끝없는 갈등을 이어가는 오늘날의 모습이 미래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죽음이전시되는 순간이였다.

(...)

화재 현장 영상을 바베큐, 생선구이와 교차 편집한 영상이였다. (...)

댓글은 더 가관이였다. (...)

하이하가 호흡을 골랐다. 라마스 사람들에 대해 갖은 비하와 조롱이 오가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으나 화재 현장을, 고인과 부상자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건 충격이였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