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 결과적으로 이는 오늘날 외국 등을 바라볼 때 (저마다)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 된지 오래이지만, 그럼에도 한때 그 상식이 미흡했었던 시대... 이른바 근대 제국주의시대의 흐름 가운데서, 그나마 이러한 내용의 기록이 남게 되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매우 독특했다고 생각되는 일면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과거 한반도를 방문했던 이 '외국인'들이 이른바 '헌대적 가치' (또는 진보적인 정신)을 통하여 오롯이 그 나라를 존중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록에 등장하는 '채산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결국 이들이 한반도의 자원을 탐사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국(독일)과의 교류를 어느 정도까지 확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한반도가 지닌 가치를 얼마만큼 가늠하여야 하는가? 하는 나름의 척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난다.
조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독일과 무역을 위해서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말하자면 조선은 자주국가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조선이 언젠가 이웃 나라의 보호와 지배를 받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151쪽 /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
그러나 어디까지나 점령과 수탈이 아닌 '교류'를 위한 눈은 그 나름대로의 온건함으로 타인을 마주하게 한 모양이다. 실제로 책 속에는 조선인 (또는 대한제국인)을 바라볼때, 크게 인간과 문화 등에 주목한다. 그야말로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은 나름 형식적이고 경직된 예의 친절함과 대비되는 인간 내면의 천진함... 그리고 그무엇보다 중국 문화와는 (나름)차별을 두고 있으며, 특히 급격한 체질변화로 '근본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된' 일본제국과 비교하여, 분명 조선은 그 문화적 본질(순수)을 간직한 국가였다.
세창양행이 수입한 1900년 대한제국의 무기 주문서를 보면 1.200개의 총알, 소총2상자, 대포6대다. -중략- 숫자로 판단할 때 세계 흐름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 능력이 전무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64쪽 / 대한제국은동아시아의 황금사과인가
허나 안타깝게도 그 정체성을 기준으로 한 '변화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한반도 속 국가의 자주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소위 일제시대의 결과를 진단하여, 먼저 당시 대한제국의 한계를 '무능'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적어도 책은 그러한 인식에 자그마한 변화를 주문한다. 특히 국제사회에 한반도가 무가치한 땅으로 인식되었다는 상식...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조선사회의 느긋함이 일종의 나태함과 무능함으로 인식되고 또 경직되어 전해진 것은 일종의 일제 식민사학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과거 조선이라는 국가가 일본처럼 '서구화'를 서두르지 않은 것이 '실책'(일반적인 역사적 평가)이라면, 결국 그것 역시(결과론에 비추어) 크게 자책하고 반성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인이 그 본연의 전통과 사고를 버리지 않은 것이 결국 당시 국제사회의 질서, 즉 약육강식의 흐름에 저항 할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는 것, 더욱이 오래도록 독립을 염원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현대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근본에는 이 나름의 '특징' 즉 이 책에 기록된 외국인들이 보고 마주한 한반도 문명의 특징 또한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하기 충분하다 여긴다.
이들은 서구문명화를 위해 내재된 유교전통문화를 깡그리 없애고 서양일본인이 되고자 몸부림친 이웃과 다르다. -중략- 이들이 없었다면 독립된 주관을 소유한 21세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313쪽 / 조선인의 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