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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츠님의 서재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장회익
  • 19,800원 (10%1,100)
  • 2019-09-20
  • : 834

과거 자연철학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면서 분명 '나'는 이를 증명의 역사중 하나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있다.   때문에 이를 좀 더 드러내자면, 이책 또한 나름 자연철학에 대한 본질에서 발전에 이르는 오랜세월에 대한 저자만의 정리라 할 수 있는 내용이 녹아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지극히 평범한? 철학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여느 독자의 입장에 있어선 의외로 이 모든 내용을 이해하는데 독서가 아닌 '공부'를  강요받게 될 것이라는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책으로서도 인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그럴것이 저자가 드러내는 '철학'의 배경에는 더욱 더 생소한 동양의 역학(성학십도와 심우십도)이 녹아있다.   그러나 본디 성학십도 등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그 핵심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이해하여야 하는가? 에 대한 것에 있어선 분명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도 분명히 답할 수 없는 무지에 가까운 영역에 놓여있다 해도 과연이 아니다.   허나 단 하나 확실히 주장 할 수 있는 것은 본래 자연철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인간의 본질과 선 그리고 사회의 질서를 강제하는 '정신적인 개념의 정리'가 아닌 '물질의 정리와 증명'을 위하여 발전된 개념이라는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 유명한 고대 그리스 서양철학과 함께 이 동양의 철학 또한 그 존재를 위해 필요한 개념을 오롯이 간직한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결국 (동양의) 앎의 탐구라는 영역에 있어서 동.서양의 다름은 있을지언정 높고 낮음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감상이 든다.   실제로 오늘날 그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에 있어서, 이 고전역학의 역활 또한 보다 더 다른 방향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이에 더 나아가 과거 세계의 역사라는 무대에서 소외된 이 생소한 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여느 독자 스스로가 앎에 대한 척도를 멋대로 재단하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고 본다.   


이처럼 결국 '강의'라는 단어가 들어간 만큼!  책 속의 내용 또한 단순한 글자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옛 말에 '아는 만큼 보인다' 라 했던가?  이에 저자 또한 단순히 고대의 자연철학, 동방의 독특한 지식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더 나아가 현시대에 발전하는 과학의 영역에 이르는 '연결고리'에 있어서도 그 동양철학이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하려 한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이때 이미 위에서 언급했지만, 지금의 독자인 '나'의 입장에 있어선 그 모든 내용과 설명이 오롯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번 두번... 이 두꺼운 책을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역시나 교육자이자 학자인 저자의 세계에 다가가는 것은 역시나 버겁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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