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과 친화성, 이러한 떠남과 결합의 교차 관계를 실제로 보여 줄 수 있는 경우가 중요하면서도 가장 눈에 띈답니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둘씩 결합되어 있던 네 개의 존재가 서로 접족함으로써지금까지의 결합을 버리고 새롭게 결합하는 경우들 말입니다. 이렇게 떠나보내고 붙잡고, 또 이렇게달아나고 찾고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드높은 섭리를 실제로 볼 수 있다고 믿는 거지요. 사람들은그러한 존재들에게 일종의 의지와 선택 작용이 있다고 인정하며, 따라서 ‘선택적 친화력’이라는 조어를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p.60-61
‘친화력’은 1755년 스웨덴 화학자 토르베른 베리만의 ‘선택적 끌림’에서 빌린 말이다. 괴테도 자연과인간의 관계가 기계적인 인과관계로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원소들 사이의 분리와 결합을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영역으로 보고 이런 표현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소설은 파우스트에서 보았던 면모와는 달리 남녀 간의 복잡한 관계와 이끌림, 이를 막는 관습을 사각관계를 통해서 풀어낸다. 독일시골 귀족인 에두아르트가 젊은 시절 사랑한 샤를로테와 이루어지지 못하고 부유한 중년 여성과 결혼한다. 샤를로테도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게되지만, 둘의 배우자가 죽고 난 뒤에 결합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관계는 과연 꿈같지 않았고. 그러던 중 에두아르트의 친구(대위)와 샤를로테의 친구 딸인 오틸리에가 집으로 오게되며 관계는 금방 흔들리게 된다. 대위-샤를로테, 에두아르트-오틸리에의 위험한 줄타기가 이어지고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으며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의 본성적 욕망을 무시하지 않고, 시간와 주변 관계에 따라 쉽게 다른 형태가 되는 사랑이 무엇인지 다소 회의적인 얘기를 한다. 관습이 왜 존재하는지에 관한 답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관습의 존재를 포함한 인간의 삶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특유의 시니컬함으로 바라본 소설이었다. 플로베르나 에밀 졸라 풍의 이야기를 자주 읽었지만 그와는 묘사 방식이 다른 것이 괴테만의 매력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