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메 소세키, <한눈팔기>
부끄럽지만 나츠메 소세키의 책을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음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완독하지 못해서 아쉬웠단 차에 <한눈팔기>가 나츠메 소세키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자 마지막 완성작이라는 소개를 보고 다시 소세키 문학을 섭렵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작가의 삶을 비추어 다른 작품의 메타포도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반영론적 독서를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자전적인 작품은 재미를 쉽게 붙이는 편이다.
소세키는 1867년(메이지유신 직전 해)에 태어나 1916년까지를 살아간 사람으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개화기 지식인의 포지션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쉬웠다. 개화를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개화에 동참하면 끝없는 경쟁대열에 뛰어들게 되는 현실에서
“그는 부자가 될 것인지 위대해질 것인지,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어중간한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얼간이 같은 그에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위대해지고자 해도 세간의 번거로움이 방해했다. 그 번거로움의 씨앗을 찬찬히 살펴보면 역시 돈이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위대해지고싶은 욕망과 많은 돈을 벌고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그를 둘러싼 현실은 발목을 잡는 걸로 모자라 그 어느 것도 얻지못하게 막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밖에도 겐조(주인공)가 아내와 시마다, 누나 등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적나라한 심리 묘사는 이미 객관화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니컬한 문체는 지금 소세키의 이름이 누리는 명성을 모른다면, 겐조가 자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몰라도 신랄하다 싶을 정도로 싸늘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 신기함 속에는 자신이 주변과 용케 싸워 이겼다고 하는 자긍심도 상당히 섞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되지 않은 것을 이미 이룬 것처럼 간주하는 도취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왔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남의 집에 보내졌다가, 양자로 입양되고, 양부모의 이혼을 겪는 등 고초를 겪은 그가 주변인에 대한 품는 마음은 더없이 차갑기도 하고 상처와 열등감도 많은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지만, 가족에 대한 의식이 붕괴하고 변해가는 시대상을 더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부부는 틈만 나면 자신들의 은혜를 겐조에게 의식시키려 했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라는 부분에 큰 소리를 냈다. 또 어떤 때는 ‘어머니가’하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제쳐두고 과자를 먹거나 옷을 입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었다. 자기들의 친절을, 억지로 어린아이의 가슴 속에 외부로부터 새겨넣으려 더는 그들의 노력은 오히려 반대 결과를 가져왔다. 겐조는 귀찮았다. ‘아버지가’라든가 ‘어머니가’라든가가 나올 때마다 겐조는 자기만의 자유가 그리웠다. 자기에게 사주는 장난감을 좋아하고 그림책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면서도 그것들을 자기에게 사 주는 인간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최소한 이 두가지를 깔끔하게 나누어 놓고 순수한 즐거움만을 탐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오래 전에 연락을 끊은 양부모들이 불쑥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는 단조로운 사건이지만 겐조의 생각이 꼬리를 물며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고, 그들을 단칼에 끊어내지는 못하는 그의 심리를 쫓아가보는 것이 소설의 동력이었다.
잠깐 읽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우스꽝스러운 활기가 느껴졌다면 <한눈팔기>는 보다 직접적으로 심리를 파헤치는 서술이었다. 다른 유명한 저작을 읽은 분들에게도 소세키 문학을 관통하는 힌트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