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단두대와 욕조에서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누군가의 죽음이 너무 쉽게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나라를 위해서, 혁명을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붙으면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금세 뒷전이 된다. 그런 명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마저 의심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잔혹한 행동 자체도 무섭지만,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분위기가 더 싫고 두렵다.
특히 전쟁 중에는 도덕을 따질 자리가 없고 이기는 쪽이 옳다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승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이겼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저지른 일까지 옳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질 때마다 어느 편에 섰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면, 억울한 사람에게는 대체 어디에 호소할 자리가 있을까. 이런 대목에서는 인물의 말에 선뜻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어려울 만큼 반박하고 싶어진다.
시몽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자신이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까지 겹친다.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선택을 어디서부터 되짚어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처음부터 적이라고 여겼던 사람에게 당하는 일도 끔찍하지만, 내가 속한 편이 나와 가족을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일 것이다. 그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그 마음을 복수심 하나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그 사람의 죄를 밝힌 다음이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잘못을 알아도 처벌할 수 없다면, 증거가 있어도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두대와 욕조에서 관심이 가는 것도 그런 문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별개로, 진실이 밝혀지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갖고 싶다. 그 기대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의 복수를 통쾌하게만 바라보기 어렵다. 가해자가 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 처벌로 죽은 사람이 돌아오거나, 남겨진 사람의 삶이 이전처럼 회복되지는 않는다. 피해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는데 책임을 묻기 위해 또다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불공평함 때문에라도 시몽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