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 리뷰 메일을 받곤 한다. 블로그에 올리는 북에세이 영향인 것 같다. 미천한 실력인 내게 요청을 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많아 늘 스치듯 메일을 닫기 일쑤다. 일본 철학자 다니가와 요시히로의 <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사람들>도 스칠 뻔한 책 중 하나였다. 제목에 끌려 마우스 휠을 재빨리 움직여 대충 훑고 나가려는 순간 2명의 이름이 내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김겨울, 이연. 추천사 쪽으로 가니 분명 겨울 서점의 작가 김겨울과 화가이자 작가 이연의 이름이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한 명도 아닌 좋아하는 작가 둘이나 추천사에서 이름을 볼 수 있는 거지?'
저자는 1990년 교토생 철학자로 인간이 살아가는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연구하는 인간환경학을 전공했다. 특이하게도 현재는 미술학부 디자인과 특임 강사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손에 든 핸드폰만 보며 걷는 사람들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스마트폰은 언택트 시대를 열었다. 하루에 수십 통씩 쌓이는 메신저 대화는 개인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사회망의 지표가 된다. 나도 매일 일어나 서로 다른 성격의 메신저 방마다 기상 인증을 올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 얼마나 오늘을 잘 보냈는지 인증으로 마감한다.
책은 총 6장 구성으로 길을 헤매기 위한 길잡이부터 생각하는 힘, 스마트폰 시대의 철학 및 자기 대화 등 촘촘한 거미줄 같은 사회망에 연결된 바쁜 현대에 맞는 철학을 제시한다.
작가는 현대인을 '복작 복작 모여 자기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을 결정하고,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웅성웅성 떠드는' 대상이라고 정의한다. 여러 연결은 사람들 속에서 행여나 뒤처질지 모른다는, 정보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헤매기 위한 안내서'
벌에게 마음을 쏘이듯 날카로운 말과 주제를 골랐다며 저자는 '헤매지 않기 위한'이 아닌, '헤매는' 안내서이길 바란다. 헤매기 위한 안내서라니 발상이 참 재밌다. 흔히 들었던 말들과 전혀 다른 결의 주장이 펼쳐진다.
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책에서는 지식과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요즘 사람들과 <파우스트2>를 읽는 데, 1권에 비해 2권은 '고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난해하다. 괴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그리스 로마신화들이 총망라되어 얽히고 설켜있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중도 포기 없이 매일 꾸역꾸역 읽어가는 이유가 뭘까? 책 속에 담긴 괴테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요, 그의 상상력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아닌지 싶다. 철학은 그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긴 말을 끝없이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옛 문인들이 남긴 글을 읽고, 자신을 비춰 생각해 보는 것. 독서와 철학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시 접속 사회'
적합한 단어임에도 씁쓸함과 외로움이 배어있다. 사람이든, 정보든 우리는 상시 접속된 사회를 살고 있다. 문제는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집중력도 예전과 다르다는 걸 느낀다.
책 좀 보다가 메신저 내용을 확인하고, 다시 독서하다 영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지금 뭐 하려고 했었지?'라며 버퍼링이 걸린다.
미디어 이론에 따르면, 우리들의 감각은 기술에 의해 재구성된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수록 우리의 행동이나 사고방식과 보는 관점까지 달라진다니 집중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것 같다. 상시 접속 사회에서 우리들은 '고독'을 잃어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혼 없는 반사적 커뮤니케이션을 되풀이하고, 짧은 글과 행동으로 표면적 대답을 하면서. 고독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철학 책답게 사고를 비트는 내용이 많다. 특히, 현대인의 맹목적 자기 계발이라든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관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자신의 목소리는 한 가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사고방식이라 마치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내면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면,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고. 무엇이든 과하면 약이 아니라 병이 되는구나 싶다.
자기 계발 좋은 거 아닌가? 왜 문제지? 철학자는 자기 계발의 논리는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른 데 그들처럼 되지 못하면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탓을 돌리는 저주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시대, 서로 연결되었지만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지식을 습득하고, 상상하고, 고독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신의 작은 세계에 갇히지 말고 깊이 사고하라고.
책은 비틀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촘촘히 연결되었는데 왜 외로운지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읽고 쓰고 사유하며 사는 게 건강한 삶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