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를 듣고 사두었던 책이다.
몇 번 들었다놨다 했는데 편지글 형식이 그닥 당기지 않아 그대로 두었던 터였다.
김신양샘 페북에서 영화화되었다며 소개하신 글을 보고 읽어봐야 겠다 생각했다.
출장 사이, 쉬는 날에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줄리엣 애슈턴. 작가.
발랄한 문체에 가벼운 느낌으로 시작.
첫번 째 인상적인 점.
줄리엣은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가장 오래 함께해왔던 신부님과 또 한 명, 같이 일하면서 가장 사이가 안좋았던 여자에게 부탁했다. 가장 긍정적으로 써줄 만한 사람과 가장 부정적으로 써줄만한 사람의 소개를 종합해서 객관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라는.
이런 발상을 한 줄리엣도 재밌고, 요청대로 써준 벨라도 대단하구나 감탄.ㅋ
58쪽에서 덜커덕.
"... 해고하지 않았소."
영어에선 반말과 존대말이, 남자언어와 여자언어가 없을텐데.
요즘 누가 이런 말투를 쓴단 말인가.
마초 냄새 나는 문장투.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대말 하는 비대칭까지.
이솔라와의 편지에선 갑자기 존대말에서 반말로 변한다.
정중하거나 혹은 친한 사이에 쓰는 문장이 다를 수는 있겠지.
번역자의 언어 감각이 부자연스럽다. 에잇.
여러 사람이 나오는 터라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관계도를 그려보면서 봤다.
편지글 형식 소설의 특징이겠는데, 모든 주인공이 하고싶은 말을 모두 직접 한다.
작가나 화자의 해석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들려준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있다.
읽는 사람은 작가의 해석이 아니라 자신이 들은 바(본 바)대로 듣는다.
실 생활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않고 끼어들어 말하기 쉽상인데, 편지는 일단 상대의 글을 모두 읽어야만 답을 할 수 있다.
이런 편지글 형식은 처음 읽는 것 같은데, 다양한 인물군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이야기를 병렬하고, 동등하게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줄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중간쯤 읽었을 때 페북에 나온 영화 예고편을 봤다.
인물들에 얼추 익숙해졌기에 실사영화의 배역들이 내 인상을 가로막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런데 방심하다 당했다.
나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서 주인공들의 연애기류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고편에서 줄리엣과 도시가 이어지리라는 복선들을 본 것이다.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ㅠ 책 절반 가량을 읽어오면서 구축한 나의 상상의 세계가 깨져버렸다.ㅠ
줄리엣이 건지섬에 도착한 이후의 상황은 마치 <안토니아스 라인>의 공동체 같았다.
건지섬의 북클럽은 의도적인 공동체는 아니지만, 북클럽을 중심으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엘리자벳의 아이를 같이 키우고 서로의 슬픔을 위안하는 장면들이 강고한 가족이데올로기와 국가이데올로기, 마녀 신화 등을 무시하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틀에 갇히지 않고 편견 없이 사람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기,
예절, 예의라는 관례보다는 존중의 표현으로 우애를 나누기.
두 작품에서 겹치는 이미지다.
여러 사람의 손에서 자라는 딸 컨셉도 겹친다.
공동체에서 크는 아이의 특징 표현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사랑스럽고, 호기심이 많고, 한부모 혹은 부모의 상실로부터 출발하게 된다는 점까지.
1946년은 전쟁이 끝난지 1년밖에 안된 상황이므로, 가부장을 중심으로 안전한 가족이데올로기가 확고한 세상이 아니라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누구라도 타인의 도움이 절실한 시대였을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혼돈의 시간, 모두의 안전이 보장되기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서로 돕고 사는 이웃의 소중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작가 매리 앤 쉐퍼는 70대 죽음 직전까지 이야기 할머니로 살았다고 한다. 사람에게서 기쁨을 얻고자 한 사람이었다고.
문학모임 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이웃이 좋아하는 책들을 이 소설 주인공들의 인생 작품으로 만들어 쥐어주었다. 살면서 책에서 배웠던 내용을 책 곳곳에 배치해두었다.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 문턱에 섰을 때 조카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것은 연애의 진부함에서라기 보다는 작가 소개가 너무 자세해서가 아닌가 싶다. 캐릭터들도 어디선가 만난 듯한 느낌을 주는 탓도 있겠고.
감동받아 울먹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슴 찡하게 아픈 장면이 있었다.
상처 많은 시대일 수밖에 없는 시대에서 당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꿋꼿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짠함과 감동이 밀려온다.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고 할까.
재미 있어서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오늘 빨간책방을 다시 들었는데, 내가 생각한 포인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책은 해석하기 나름이구나, 입장과 경험에서 느끼는게 다르구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김중혁 작가는 "문학 팬이 쓴 최고의 소설"이라고 했다.
그러보니 소소한 로망 요소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지요. 6년간 전쟁을 겪고 전쟁에 대한 글을 쓰며 살았으니까요. 이제는 뭐든 좋으니 다른 것에 관심을 쏟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길 바라는 것과 같아요. 전쟁은 이미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되었고, 그 이야기를 뺀 삶은 불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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