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의 반절도 채 읽지 않았을 때 느낌이 왔다. 아, 이 사람 덕후구나. 이 책을 완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감도 뒤따랐다. 난 덕후의 덕후니까. 저자는 자신이 지하에 매료된 이유를 찾는다. 이를 위해 기억에 기반한 과거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지하를 직접 탐방한다. 이 여정에서 눈을 쉽게 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발로 뛰어 찾은 해답이 또 다른 질문을 낳는 것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자 자신, 개인에게서 시작한 사고가 인간 보편에게로 나아감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남의 경험을 꽁으로 배우기는 책이 최고다.
저자가 발을 들이는 지하는 때때로 지하철로이거나 은광이거나 무덤이기도 하다. 이 중 파리의 지하도와 런던의 지하철도가 기억에 남는다. 파리와는 물리적 거리가, 런던의 그라피티와는 심리적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르 튁과 같은 동굴과는 공간적, 시간적 거리가 멀고 제의와 같은 의식과는 심리적 거리가 상당했기에 인상 깊진 않았다.
나다르는 처음으로 파리의 지하를 공개했다. 그는 로마시대의 채석장을 납골당의 용도로 바꾼 카타콩브를 73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몇 해 전 여행 갔던 파리가 떠오르며 괜히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이 지하 납골당을 구경하며 두개골을 기념품으로 챙기기도 했다는 대목에서는, 18세기 파리의 모르그가 연상되며 군중의 관음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나다르가 발견을 했다면 레브스는 창조를 했다. 레브스는 뉴욕의 지하철 터널에 자신의 표식을 남겼다. 그는 주로 일기를 남겼다. 좋아하는 영화인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의 주인공 역시 지하철 터널로 가 그라피티를 그린다. 영화의 장면이 연상된 형형색색의 그라피티에 레브스의 은밀함이 더해졌다. 암호 그 자체 같았다. 해독을 기다리면서도 기다리지 않는 존재의 암호.
지하에 들어가면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한다. 특히 머리 위에 몇 톤의 바위가 있다는 중압감은 길을 잃은 이에게 ‘멘붕’을 가져다준다. 공간을 기억할 만한 특이함을 지닌 지형물이 없고 무엇보다, 빛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덕후가 희미해지고 내가 떠올랐다. 앞으로 나아가긴 하는데 이를 측정할 지표는 없으니 위치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멈추진 못하겠고. 빛이 없으니 그림자조차 없는 지하에 갇힌 것만 같고.
막막한 나에게 고대 나폴리의 시가 아래서 길을 잃은 저자가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길을 잃었지만 자신을 마주했다. 공간 지각의 둔화와 영적 성찰의 과학적 관계성이 설득력 있었다. 그러니까 길 잃음은 완전한 잃음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