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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님의 서재
  •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
  • 강윤미
  • 13,950원 (10%770)
  • 2023-02-14
  • : 359


평온한 날들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평온하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때로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 스스로가 무언가에 길들여져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평온을 오히려 불안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작가의 타이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강윤미 시인의 산문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를 읽는다. 강윤미 작가는 시인이기 이전에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다. 생활 속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특히, '나는 사랑받지 못 한 사람이어서 시를 쓴다'라는 문장에서는 한참을 울고 말았다. 이렇듯 사랑하는 것들은 버리고 나서야 혹은 떠나고 나서야 그 존재 가치를 인정 받게 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사계절의 마음 풍경이 모두 담긴 한 장의 달력 같다. 그래서 나는 1부를 겨울을 보내는 마음으로 읽었다. 2부는 봄, 3부는 여름, 4부는 가을의 느낌이었다. 강윤미 시인에게 사계절은 이렇듯 다르게 다가온다. 겨울을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여름이 있고, 그 여름 안에는 봄이 있고, 봄의 새싹들은 가을의 열매를 약속한다. 


나는 강윤미 시인을 모른다.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문장들로 인해 강윤미 시인의 손을 맞잡은 느낌이다. 친구가 되고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다정한 문장들. 나는 이 책의 문장으로 인해 좋은 친구를 얻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강윤미 시인을 가장 아끼는 그녀의 이름 모를 찐 팬이 되기로 했다.

눈이 오는 일을 목격하기 어려워서일까.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외로운 사람의 얼굴 같다.- P24
집에 개를 키우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어린 시절. 우리 집을 거쳐 간 개의 족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개의 역사는 삼 남매의 성장과 함께한다.- P33
내가 쳐 놓은 커튼 밖으로 나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비치지 않았으면 했다.- P39
저녁노을을 닮은 귤빛이 내 손바닥에 스며든다. 그래서 가을이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 P46
아이는 웃고 짜증내고 떠들고 토라진다. 그러려고 아이가 된 거다.- P73
"가구 옮기는 일을 취미로 가진 아내와 사는 기분이 어떤가요?"- P84
메르시!
영화는 어디서든 시작된다.- P193
서랍 속 많은 물건에 의지해서 하루를 보내고 서랍에 물건을 채워 넣으며 삶은 지속된다. 닫히지 않는 서랍엔 모양이 잡히지 않은 하루를 담기 좋다.- P201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P209
구슬 속에 비친 나를 훔쳐 오래 오래 시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P218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듯, 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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