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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의 서재
  • 작은 일기
  • 황정은
  • 12,600원 (10%700)
  • 2025-07-11
  • : 22,032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 작은 일기의 가제본을 받았다. 지난 7개월 동안 계엄과 내란, 대통령 탄핵까지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든 시간의 중심에서, 작가는 저항의 현장을 목격자로서 기록했다. 그 기록이 바로 이 작은 일기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손상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이 가진 가장 밝은 것들을 꺼내 들고 거리에 나섰다. 큰 목소리들이 울리는 집회 한가운데엔, 함께 따뜻한 것을 나누고 서로 살피는 마음들이 있었다. 먹을 것을 건네고, 핫팩을 챙기고, 추운 밤을 함께 견디는 마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지난 겨울의 하루를 떠올렸다. 뒷베란다의 하수도가 얼어 윗집 세탁물이 역류했던 날이었다. 긴 장화를 신고도 발은 시렸고, 더 넘치기 전에 퍼내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물을 퍼올렸다. 언제 끝날지, 또다시 역류하지는 않을지, 이 겨울 내내 계속되지는 않을지 불안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들던 그 밤처럼, 이 책 속의 시간들도 그렇게 느껴졌다.

이번 일로 감춰져 있던 엘리트주의의 민낯, 전체주의에 사로잡힌 폭력적인 집단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하게 됐다. 황정은 작가의 복잡한 마음은 일상과 집회를 오가며 적어낸 일기 곳곳에 그대로 배어 있다.

이 책은 기록이자 마음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문장들로, 감히 말해야만 했던 그 시절을 정직하게 꺼내놓는다.


p.39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있다.감히.

p.39 국민의힘 소속인 시의원이 오늘, 내란을 선동했다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형사고발했다. 계엄이 아니라 탄핵이 내란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시민으로서 나는 또 모욕을 경험한다.

p.45 그와 내가 같은 날에 베였다, 우리뿐일까.

p.57 그게 되지 않을 거라고 먼저 믿는 마음, 보고 들은 바대로 학습된 포기. 부끄러웠지만 오늘은 그 부끄러움이 기꺼웠다.

p.57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 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 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
는 마음들.

p. 85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고맙고.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나는 이러고만 있다. 잠깐이라도 다녀올까, 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p.99 내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따르고자 했던 사회적 합의가 엉망진창이 되는 모습을 요즘 매일 보고 듣고 겪는다는 생각에 우울하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이 있고.
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근데 이제 그 말투가 생각나 씨발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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