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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나님의 서재
  • 기억은 물방울 모양
  • 데라치 하루나
  • 15,120원 (10%840)
  • 2026-09-30
  • : 430
마치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보석처럼, 각기 다른 네 명의 동창생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만난다.

서툴게 쌓아가는 시간들은 서로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그들의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 굳건함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중학교 동창들의 서로 다른 시간은 그렇게 뒤늦게 돌아봤을 때 그러한 퇴적의 시간을 거쳐왔다는 것을 알곤 한다.

특이하게 소설은 현재로부터 5년 단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던 것 같은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누적된 시간과 경험이라는 것이 현재를 만들어오고 있었음을 시간을 거슬러가면서 하나씩 알게 된다.

현재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그 이유를 과거에서 찾아가게 하는 방식은, 지나온 시간이 현재를 설명한다기보다 지금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 사람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조금씩 새롭게 이해해가는 기분이 든다.

마치 그동안의 일들이 지금을 만들어냈다는 시선보다,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에는 특별히 빛나는 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과 이해할 수 없었던 관계, 별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함께 쌓여 있다.

네 사람은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소설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하나씩 알게 한다.
누구나 살아가며 힘든 일이 있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어려움이 있는 법이지만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의 현실을 더 어둡게 보기 마련이다. 소설은 그런 어두운 현실을 묵묵히 걸어온 스스로를 위로하게 하고, 애써 위로하지 않더라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타인을 통해서도 구원받게 한다.

그들 넷의 관계도 그러하다. 아주 가까운 친구 관계라고 하기 어려운 사이지만 묘하게 오래 남아 있는 관계. 그 관계는 일상적이라기엔 부족하고, 특별하다기엔 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고, 별것 아닌 마음씀이 오래 남을 수도 있다.
서로의 인생의 중심에 있지 않았기에 서로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삶을 붙잡아주는 다정함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과 행동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걱정해서 한 말이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마음을 말해주지 못하기도 한다. 그때는 왜 저렇게 했을까 싶었던 행동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때 내 입장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 역시 남는다.
이해는 용서와도 다르고, 그 행동이 옳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그때의 행동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느끼게 한다.

특별한 이야기로 구성되지 않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가 단단해지는 마음의 힘을 얻는다. 서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직접 나눌 때 비로소 자신이 택한 길이 어긋나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지나온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형태로 보석을 리폼하는 일을 하는 네 사람은 변치 않는 보석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간다. 형태가 변해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보석은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형태는 바뀌지만 그들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
시간이 지나면 관계도, 기억도, 살아가는 방식도 바뀔 수 있지만 무언가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변치 않는 보석처럼 소설에서 등장하는 영원이라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삶은 변하고, 그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그 안에서 이어지는 무언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소설은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내용을 통해서 평범하지만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는 느낌을 준다. 소설에서 말하는 기억이나 영원과 같은 구조적 의미보다 더 큰,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독여주는 그런 기분.
살아가는 것이 꼭 모든 것에 의미를 둬야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무심히 지나쳤던 혹은 의미를 두지 않았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지친 마음을 다잡아주기도 하는 것처럼, 평범하고 서툴러도 그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
꼭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서툴게 대했던 그 시간조차도 그들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주는 따뜻함은 누군가가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거나, 지나온 시간을 모두 좋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고, 좋은 마음이 엉뚱한 방식으로 전해진 순간도 있으며, 그때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마음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한다. 네 사람은 서로의 인생을 구해줄 만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아니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관계가 그러할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해서 그때는 알아보지 못했던 마음들이 시간이 지나 삶을 조금씩 받쳐주는 것. 특별하지 않은 삶과 서툰 관계가 꼭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지나온 시간도 충분히 소중할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은 바로 그런 평범한 관계와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채로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따스하게 읽혔고, 오래 마음에 남는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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