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라고들 한다. 그치, 나는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접할 수 없었을 사실과 세계를 접했다.
그러나, 난 이런 책을 읽을 때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떤 면에선 읽기가 꺼려진다. 의료 윤리의 면에서, 어디까지 환자인 아이의 정보를 드러낼 수 있는지, 애초에 (사전에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도) 엄연한 치료 기록을 드러내도 되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의사/의료인이 낸 책을 여러 권 읽어 봤는데, 당사자의 사적인 정보가 내밀하다 싶을 만큼 많이 기재되어 있어서 얼굴을 찌푸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객관적인 정보의 나열뿐 아니라, 무조건적인 동정이나 연민의 투, 그 당시 본인이 제대로 치료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참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듯한 일방적인 말투까지. 환자와 그 가족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은 글이 시중에 너무 많았다. 유명하다는 의료인의 저서 십중팔구는 그랬다. 그사람들은 의료 윤리를 위반한 것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우도 갖추지 못한 자다. 책만 봐도 의료인이라 불려서 안 되는 이들이 많다.
이 책은 그런 저서들과는 조금 다르다. 환자와 주변 가족들의 내밀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는 것도, 개개인마다 다른 치료 과정과 그 당시 본인의 심정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 점은 같다. 그런 면에서는 여전히 우려스러웠고, 읽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웠다. 다만 말투가 달랐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서술에서는 아이와 본인을 의료인과 피의료인이라는 상하의 관계로 보지 않았다. 어른과 아이의 위계를 세우지도 않았다. 잘 놀아주고 친절한 아저씨 - 아이 정도랄까. 아이와 보호자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무조건 동정하거나 연민하지도 않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건 '예의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를 단정하지 않았고, 본인을 합리화하는 듯하면서도 매 수업에서 더 잘하지 못했음에 참회하고, 최선의 도움이 되지 못했음에 미안해했다. 장애를 나쁘다거나 부정적인 특성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버린' 특성으로 인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말임에도, 나는 여전히 장애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의 부주의함이나 갑작스런 행동, 거부 행위에도 당사자를 나무라거나 하대하지 않았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 행동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의 특성이 저자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의 태도는 아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상호작용과 치료 기법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냉철하고 객관적이지만, 분명 희망에 차 있고 긍정적으로 보였다. 진전을 보이고자 노력하는 아이와 보호자로부터 얻게 된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18년간 방문 언어치료를 하며 현장에서 느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지나치지 않는다. 아이의 가정이나 어린이집 등의 돌봄 기관에 방문함으로써 보이는 사각지대의 문제들을 저자는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장애 아동과 성인의 돌봄 및 치료 기관, 시스템의 절대 부족과 있는 기관도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폐쇄되는 현실, 장애인 복지 지원의 허점(복지를 총괄하는 일원화된 기관이 부제)과 여성에게 돌봄이 전적으로 위임되며 기존의 사회에서 쌓은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 돌봄의 갈등으로 인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소외되고 고립됨으로써 찾아오는 가정의 불화에 대한 소신도 어김없이 밝힌다.
우리는 아직 길가에서 장애인을 보기 힘들다. 백화점이나 지하상가처럼, 평지에 경사로,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는 곳곳에서 마주하나 그 이외에서 우리는 그들을 마주할 수 없다. 단순히 길거리뿐이 아니다. 수많은 일터에서는 더더욱 그들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이동과 일자리와 다른 많은 영역에서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하기 위한 준비를 부단히 해야만 한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서는 장애인 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들이 행복할 수 없다. 삶 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널리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저출생과 고령화의 문제로 많은 초중고교와 대학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 학생 수의 부족으로 폐교 위기인 기관들을 리모델링하여 국공립 특수교육 전담 기관으로 탈바꿈하면 어떨까. 이미 폐교된 기관을 다시 개축하거나 고쳐서 써도 괜찮을 듯 하다. 성인인 장애인을 돌보거나 자립을 돕도록 교육하는 주간보호센터나 자립/일자리센터도 좋을 것이다.
언어치료를 비롯한 각종 놀이, 감각치료 등의 바우처는 학교를 다닐 경우 만 20세까지, 그렇지 않을 경우 만 18세면 지원이 끊긴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일까.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긴 지금, 수치상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의 지원을 끊는 것은 부당하다. 살아 있는 한 얼마든지 감각하는 존재인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원해줘야 한다. '복지'란 사람이 사람답게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는 데 부족함을 덜도록 돕는 것이라 믿는다.
저자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병원 치료실이 아닌 가정이나 보육 시설로 방문해서 수업을 했기에, 더 많은 의사 소통과 놀이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날것의 생활 공간에서 한 치료는 의료보다는 '체험'이자 '학습'이며 '여가'이기도 하다.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그 시간을 겁먹지 않고 즐길 수 있다. 비단 아이들만 치료실 바깥에서 함께한 영향이 닿진 않았을 테다. 그것은 아이와 함께한 의료인인 저자에게도, 저자의 기록을 통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뭉클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몽글거리는 느낌. 장애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에 화가 나면서도, 순수한 아이들과 새로운 소통의 방식과 마주할 수 있어 반가운 책이었다. 기쁨과 분노. 두 가지 감정을 적
장애가 있는 아이는 놀림이나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괜찮은 친구를 만날 가능성도 있다. 조건이 좋지는 않지만 들이가 해야 할 몫도 있다. 어쩌면 이 아이가 예상보다 훌륭하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삶은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감정과 무관하게 지속된다. - P198
전문가로서 언어치료사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냉철하게 상대의 언어를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고 수업의 목표와 진행 방식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 낭만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정확한 예측도 미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 불일치의 틈 안에 기적과 희망이 숨쉬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121
아이가 말을 더듬는다고 해서 부모를 탓하면 안 된다. 하지만 정서적 요인이 아이의 언어발달에 분명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어른인 부모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말더듬도 예외는 아니다.
말은 강물과도 같다. 아이들의 말은 어른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한다. 미숙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막히지 않고 유유히 흐를 수 있다.- P111
모든 문제행동은 아주 작은 곳에서 미미하게 시작된다. 그러다 점점 그 강도가 세지게 마련이다. 아이의 덩치가 커져 더는 물리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시기가 오기 전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신뢰가 손상된 상황이 오기 전에, 아이에게 수용의 경험이 쌓이게 해주어야 한다.- P89
늘 경쟁에서 배제됐던 이 아이들이 역설적으로 경쟁에 목말라한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것,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진다고 해서 내가 열등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주, 컴퓨터와 모바일 게임에 빠진다. 이 친구들이 원하는 건 누군가의 한 마디다.
"너도 우리와 같아.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