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내게 '생각의 범위'란 상당히 좁은 것이었다. 나의 의문이 철학적이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사실 그것은 매우 모순적인 말이었다. 철학이란 모든 학문을 통찰하는 논리적 사고이므로, 결국 철학도 증거주의와 이성에 기반한 과학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즉 21년을 살아온 내가 가진 의문들은 철학이라는 가면을 쓴 피상적인 껍데기였다.
그런 내게, 중학교 이후로 본 적이 없었던 주기율표는 새롭게 생각할 힘을 가져다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보다 과학에 기반하여 넓게 생각할 힘을 주었다. 그간 재미없다는 이유로 과학을 등한시했지만, 세상의 곳곳에 다양한 쓰임으로 존재하는 많은 원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세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각자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비슷해 보여도 천차만별인 원소 각각이 가진 고유함은, 흡사 인간을 떠올리게 했다. 이게 그리 틀린 것도 아닌 게, 결국 인간의 뼈도 수많은 원소들의 집합체이지 않은가. 결국 우리에게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모두 '원소의 결합'의 산실인 것이었다. 그리고 결합되는 원소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 된다.
내게 과학 교과서같은 책은 많이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과학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준 것은 이 책이 유잃하다. 옹골차지만, 오만적이지 않고(간간이 있는 구어체적인 설명은 친근해서 이 책을 소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노란색 밑줄도 마찬가지!), 많은 지식이 있지만, 그 지식에 다가감에 있어 겁이 나지 않게 만든다. 주기율표를 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같이 원소로 세상을 이해하자고 속삭여주는 이 책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어느 의견이 받아들여질지 또는 제안 자체가 무시될지 모르겠지만 주기율표가 꼭 한 가지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주기율표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실제 수백 종의 주기율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