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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의 계승자 3
  • 제임스 P. 호건
  • 13,320원 (10%740)
  • 2018-01-25
  • : 1,127

 



기다리던 별의 계승자 시리즈 3권이 결국 나왔다. 작품성이 검증된 시리즈의 후속이고 한국어 번역본은 이번에 최초로 출간되는 것인데, 아작 출판사가 큰일을 해냈다. 나를 포함해서 SF 소설 팬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다. 스케일은 더욱 커지고, 소설 속 설정의 구성은 더욱 정교해졌으며, 특별한 갈등이 없이 오직 '과학'이라는 소재 하나만으로 느긋하게 진행되던 전작들의 전통을 버리고 드디어 과학에 음모, 정치, 갈등, 전쟁 등을 버무려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졌다.

 과학 추리소설이라 불린 1권의 명성에 못지않게 상당한 논리적 짜임새를 보인다. 소설 속에서 언급된 모든 떡밥들은 모두 타당한 설명과 해답이 나오며 만족스럽게 해결된다. 심지어 1권을 쓸 당시부터 3권의 내용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전작들의 설정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완성도를 더한다. 과연 한 사람의 머리로 이런 다방면에 걸쳐 철저하게 논리적인 구성의 스토리를 짜는 것이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가 고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물리학, 심리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진 지식인이 아니라면 이런 작품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70년대에 쓰인 소설임을 감안하면 소설 속에 새로이 등장한 여러 요소들은 참신하고 놀라운데, 그 일부가 오늘날 그대로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전쟁에 돌입한 고도로 발전된 두 문명이 개발한 인공지능들이 서로의 보안체계를 무력화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에서 "제벡스"라는 인공지능은 끊임없는 자체 점검을 통해 자동으로 오류를 수정한다고 나온다. 이 부분은 현대 암호화폐들의 블록체인 기술 작동 방법과 비슷하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제벡스의 끊임없는 자체 점검은 블록체인의 블록 생성 및 검증 과정과 그 원리가 동일하다. 암호화폐들도 블록마다 모든 거래 기록들을 비교해서 신뢰성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있고, 51% 과반과 일치하지 않는 기록들은 변조되었다고 판단하고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인공지능의 자체 점검 주기가 10억 분의 1초로 나오는데, 현재 비트코인의 블록 생성주기는 10분에 달한다.

 또 성간 여행의 개념을 신체가 실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두뇌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으로 구현하는데, 10광년 떨어진 사람의 이미지를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의 두뇌에 직접 주입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서로의 행성을 자유롭게 왕래한다. 내 눈앞에 그 사람의 물리적 실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뇌는 촉각과 시각, 청각, 후각 등을 통해 외부를 인식하므로 당사자들의 뇌에 직접 그 감각 정보를 인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눈앞에 대상이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실재'와 '인식'의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는데 이 또한 이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다. 종교라는 것은 인류 문명의 과학발전을 수백 년간 저해하고 수많은 비극과 참사를 낳은 범 인류적 범죄행위라면서 시원한 사이다처럼 묵직한 팩트를 던지며 종교뿐만 아니라 대중을 무지한 상태로 방치하여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꾀하는 기득권층 사람들의 행태 또한 비판한다. 

 그리고 외부의 위협에 맞서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진영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진영이 협력하는 모습을 그리며 당시 시대상이었던 냉전의 팽팽한 분위기를 풀고자 노력한다. 합리적인 미국인과 정의로운 소련인이 나와 콤비를 이루며 지구의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결국 두 집단은 지구 공동체라는 희망찬 화합에 이른다.

 이 시리즈 내내 이어져오던 전통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자의 과학만능주의가 조금 누그러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별의 계승자 시리즈에서는 과학(특히 자연과학)이 모든 것의 열쇠였다. 이 작품에서도 압도적인 군세를 가진 외계인의 임박한 침공이라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일반인, 정치인, 군인,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과학자로 묘사하며 과학과 이성적인 사고를 예찬하면서도  이 작품에서는 자연과학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온다. 이 문제를 주인공 과학자가 아닌 법조인이 해결하면서, 자연과학만이 능사가 아니며, 모든 학문 분야가 조화롭게 융합해야 한다는 통섭적인 태도를 주문한다.



🔼무자비한 전쟁광 지구인들이 가엾은 외계 행성을 침공할 계획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이 작품에도 다양한 반전이 존재해 중간중간 가벼운 충격을 던져준다. 시리즈를 거듭해도 시들해지지 않는 재미와 빈틈없이 짜인 흥미로운 설정, 그 속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 그리고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요소로 꼽히는 로맨스와 갈등까지 더해져 이 시리즈는 결국 유래 없이 완벽한 작품으로 거듭나고야 말았다.  별의 계승자 시리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완독하고서 대단히 즐겁고 만족스러웠는데 책 말미에 쓰인<4권에서 계속>이라는 문구를 보고는 흥분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아작 출판사에서는 5권까지 나온 원작 시리즈를 모두 한국어판으로 출간할 모양이다. 기다리기 힘드니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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