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기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적의 산물이다.
예를 하나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를 붙들어주는 강한 핵력의 상수가 지금 보다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더 높았다면 수소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10분의 1만큼 더 낮았다면 우주는 수소 외에 다른 원소들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강한 핵력의 소수점 아래 10 번째 숫자가 다른 수가 아닌, 오늘날과 같은 값을 가지는 것을 '미세조정'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미세조정되었다 여겨지는 자연계의 상수들은 현재까지 약 37가지가 발견되었으며, 이 중 하나라도 미세하게 달랐어도 우주는 물질을 만들어내거나, 천체 구조를 발달시키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극한의 조건을 만족시켜 우주가 오늘날 우리 우주의 형태로 발생할 확률은 10억에 10억을 수십 번 곱한 수에 한 번 꼴로, 한마디로 생명체를 포함한 우주의 탄생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미세조정의 문제와 예정조화
이 미세조정 문제는 오랫동안 과학계를 괴롭혀왔는데 요즘은 이 문제의 돌파구를 다중우주론에서 찾는 추세인 모양이다. 거의 무한한 개수의 우주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중에 우리 우주와 같은 것은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다중우주론은 이론적으로만 예견되었을 뿐 현재의 기술로는 관측을 통한 증명이 불가능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도 아직 많다.
책의 저자들(쌍둥이 형제가 책을 함께 썼다.) 역시 다중우주론을 배격하는 쪽이며, 이들은 우리 우주가 미세조정된 이유가 신이나 초월적 존재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본문 23쪽 : 우주는 137억 5천만 년 전 느닷없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갓 태어났을 때만 해도 우주는 손바닥 위에 얹어놓을 수 있을 만큼 몹시 작았다! 그렇다면 빅뱅의 순간에는 어떠했을까? 그때 우주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미세했다. 먼지 한 톨보다 수십억 배나 더 작았다. 그러니 그런 작은 우주가 탄생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하기까지 이 태초의 미세한 입자 속에 오늘날의 우주를 구성하는 수십억 개의 별과 은하계를 세밀하게 계획한 어떤 ‘설계도’ 같은 것이 들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대체 어떻게 건축가가 설계도도 없이 20층짜리 빌딩을 무작정 지어 올린단 말인가?」
이런 입장의 저자들이 예찬하는 이론은 "예정조화(Preestablished harmony)"라는 것으로, 이론이라기보다는 사상에 가깝다.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고드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주창한 것으로, 신이 이 세계의 모든 입자(원자, 소립자 등)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본성을 갖게끔 창조했다는 것이다.
책은 이 예정조화에 주제를 맞추고, 예정조화를 받아들였거나, 입장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예정조화 사상에 걸맞은 행동이나 발언을 한 과학자들을 거의 모두 다루다시피 한다. 연도별로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업적과 인생을 일대기식으로 나열하면서, 주요한 과학사적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풀어나간다.
이와 함께 중간중간 파이부터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까지, 현대 수학과 물리학의 중요한 이론들과 증명들이 등장한다. 파이라는 숫자는 원을 구성하는 자연계의 근본 상수 중 하나로, 흔히 3.14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수는 뒷자리가 무한하면서도 각자의 자리에 어떤 숫자가 들어갈지 전부 정해져 있다고 한다. 파이의 소수점 아래 10억 번째 자리는 반드시 2가 들어가며, 10조 번째 자리엔 반드시 1이 들어간다는 식으로, 파이 소수점 아래 자리 숫자의 등장엔 어떠한 패턴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책의 몇 가지 '사소한'문제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겐 문제가 있었는데, 책의 전반적인 문체가 북한이 김정일 찬양하듯, 과학자들의 행동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추켜세우며 영웅시하는데 꼭 북한이나 소련의 글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소련 출신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책에 등장하는 "예정조화 사상을 따랐던" 과학자들은 마치 초인이 아닌가 느껴지게 된다. 저자가 자신과 동일한 입장을 취한 사람들을 추켜세워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하필 그것이 소련 특유의 공산주의식 찬양 및 영웅화하는 문체와 결합해 독자로 하여금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어떤 과학자들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싶으면 그냥 그 과학자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기만 해도 충분할 것을, "불굴의 힐베르트에게 그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라던가, "그의 앞에는 얼마나 창창한 미래가 펼쳐졌던지!" "아! 민코프스키! 수학의 영웅!, 황태자! 그에게는 못 푸는 문제가 없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쓸데없는 사족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영양가 없는 수식어들이 책의 1/4는 차지할 듯하다.
또 이 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싶다.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학부 학생에게 건넸던 한 마디 말, "나는 그저 신의 생각이 궁금한 거라네." 이 말을 저자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아인슈타인마저 예정조화 신봉자로 꾸며버린다. 이 대목에서 나는 책을 덮고야 말았다. 아인슈타인이 "신"을 언급했단 이유로 아인슈타인을 창조론자로 만드는 일부 종교쟁이들(창조과학회 등) 흔히 하는 짓거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책
책의 부담스러운 문체와 저자들의 불순한 의도 때문에 이 책에 좋은 평가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책에서 다루는 과학적 지식은 좋았고, 예정조화라는 사상 자체도 나쁘다는 건 아니다. 미세조정된 우주를 설명하는 두 양대 산맥, 다중우주론과 예정조화 사상은 일반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둘 다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니까. 어느 것이 진실일지, 우리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