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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는 문제의 핵심을 서두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꼼꼼이 읽었다. 크게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에세이는 권두에서 작자가 밝혔듯이 "부조리의 철학"을 논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의 감수성"을 다루고 있다.

<부조리의 추론>에서는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무대장치 사이의 절연(絶緣),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p.19)"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여지껏 부조리에 대해 인식하고 탐구한 사람은 많았지만, 카뮈는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살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 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진리다. (중략)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중략) 궁극에까지 논리적이 되어야 한다. 오래도록 살아남아 버티면서 멀고 구석진 고장에 서식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일이다."

그리고 까뮈는 부조리를 정의하기를, "세계의 두꺼움과 낯설음, 이것이 바로 부조리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가 주목한 하이데거,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등의 철학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 종국에 그의 논리는 "반항"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있는 철학적 태도는 반항이다. (중략) 반항은 인간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현존함을 뜻한다. 반항은 갈망이 아니다. 반항에는 희망이 없다. 반항은 짓눌러오는 운명의 확인이다. 그러나 그런 확인에 따르기 마련인 체념을 거부한 채의 확인인 것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부조리한 인간>에서는 `돈 후안 주의`, `연극`, `정복`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부조리한 인간에 대해 조명한다. `돈 후안 주의`에서 카뮈는 사랑에 대해 상당히 재미있는 의견을 개진한다. "드물게 사랑해야만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인가?" 이는, 지상에서 젊음이 다할 때까지 그런 사랑에만 집착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준다면 지옥으로 떨어져도 견디겠다는 말과도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고 난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부조리한 창조>에서는 몇 편의 소설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의 한 인물 키릴로프를 모델로 글을 이어나가고, 반항과 자유와 열정만이 이 부조리한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글을 맺고 있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아직까지 살아 있으므로. 어쩌면 그래서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한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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