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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김님의 서재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영국의 여류 소설가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섯째 아이](정덕애 옮김, 민음사, 1999, 첫 출간년도 1988)의 주요 테마는 가족이다.

    삶에 대해 신중하며 도덕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결혼해서, 아이를 여럿 낳고, 포근한 가정을 만들어 가족-친지-이웃과 함께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며 살기를 소원한다. 그들은 가족에 대해서 구시대적 가치를 옹호한다. 사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형편이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교외에 얻은 커다란 집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의 모범적인 상을 만들어내는 기쁨으로 인해 기꺼이 감내한다. 덕분에 한동안은 이 부부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기쁨으로 충만하며, "우리가 원하던 게 바로 이런 삶이었지.", 라고 누구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 벤을 낳으면서부터 모든 것들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벤은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적절하지 못한 아이였다. 한마디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이라고 보이지 않는 아이가 태어났다. 

    벤의 출생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강아지를 죽일 수 있는 괴물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특단의 조치로 벤을 돌봐줄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데, 어느 날 해리엇은 벤을 그렇게 버렸다는 자책감으로 그 수용소를 찾는다. 인간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수시로 약물주사를 맞고 있던 벤은 오래 살 수 없는 상태였다. 해리엇의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선택으로 집으로 다시 데려오게 되고 대신 세 아이가 집을 떠나게 된다.

    그 이후로도 순탄한 순간이 없이 계속해서 해리엇은 모든 신경을 벤에게만 쏟아야만 한다. 결국 데이비드도 일에만 몰두하는 아주 범상한 도시의 인간으로 변해버렸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 큰 집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사실 이 작품에서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가족에 대한 얘기라고만 생각했으나, 벤의 출생 이후 인생에 있어 예상할 수 없는 결과로 인해 겪는 어려움과 기괴한 존재가 탄생이 가능하다는 심리적 공포감을 동시에 주고 있기 때문에 벤의 출생 이후 전체적인 맥을 잡는 게 솔직히 불가능해져버렸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기억하고 싶은 지점은,
    33쪽,
    "그건 중요해요. 모든 사람은 각자 방이 하나씩 있어야 해요."
라고 얘기한 데이비드의 말이다. 방이 있어야만이 비로소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존재감에 대해 느낄 수 있다는 공감이 들어서이다.
    또, 벤의 상태를 진단받기 위해 해리엇이 도시의 병원으로 데려갔을 때 진술한 대목이다.
    144쪽,
    그 애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애는 그녀 옆에 바싹 붙었다. 아니, 어머니 옆에 선 아이처럼이 아니라 겁에 질린 개처럼.

    이 소설은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 외로 나는 곳곳에서 상황설정이 너무나 웃겨서 몇번이고 크게 웃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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