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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김붕구 옮김, 지식공작소, 2001)는 형식상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클로드와 페르캉이라는 두 인물을 축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개척된 오래된 사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두 인물이 왕도를 찾아가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돈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회의 끝에 내려진 현실적 이상적 대안이라 보여진다. 둘 다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남은 것은 삶에 대응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자신의 인간존재를 증명하는 길이다. 오래된 사원에서 발견한 조각품을 떡하니 내보이며 무언가 보상을 받길 원하는 클로드나,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부락들을 정부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무기를 사려는 페르캉이나, 지독한 자기증명에 대한 염원을 실현시키려 몸부림치는 것이다.

탐험대로 원주민들도 꺼리는 밀림 속을 헤맨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가까이 두고 그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조건 하에 클로드와 페르캉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중에 이 부분이 작가 앙드레 말로가 이야기하려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흠...... 그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심정을 알 수 있겠어요......"
    "그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당하는 거야. 죽음이란 그가 아직 모르는 거니까. 그렇지만 대가리에 총을 한 방 맞고 뻗는다는 건 문제없단 말이야!" 이어 그는 목소릴 낮추며, "그러나 배에 한 방 얻어맞는다는 건 벌써 약간 불안스러운 노릇이지. 시간을 끄니까 말이야. 나와 마찬가지로 자네도 인생이 아무 뜻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지. 사람이란 외로이 살면 자기 운명에 대한 집념을 벗어날 수 없는 법이지...... 그때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거야, 마치 뭐랄까...... 마치 삶의 부조리의 피할 수 없는 증거인 양......"
    "누구에게나 다 그렇죠."
    "천만에! 죽음은 아무에게도 없는 거야. 저마다 죽음 앞에 놓인다면 누가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실은 모두가 생각하는...... 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죽임을 당하는 것, 그래, 바로 이걸 생각하고들 있는 거야. 그건 대수롭지 않은 문제지. 그러나 죽음, 이건 문제가 달라. 그것과는 정반대야. 자네는 아직 너무 젊지만 내가 그걸 깨달은 건 어떤 여자가ㅡ결국 한 여자에 불과하지만ㅡ차츰 늙어가는 꼴을 보았을 때야. 응, 사라 이야긴 먼저 자네에게 한 일이 있지...... 그 다음엔 마치 그 죽음의 예고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내가 생전 처음으로 계집 앞에서 성적 불능을 나타냈을 때......"
    한 마디 한 마디가 속에서 끈덕지게 얽히고 잡아당기는 수많은 뿌리를 끊고서야 겨우 겉으로 뽑혀 나오듯이 입밖으로 뜯겨 나오는 말들이다. 그는 계속한다.
    "그건 죽어 뻗어 있는 시체 앞에서 느끼는 건 절대 아니지...... 늙는다, 바로 그 늙는다는 거야. 더구나 세상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살 때는 말이야. 홀연히 엄습하는 그 파멸의 느낌!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그건...... 뭐라고 할까? 그건 내 '인간 조건'...... 내가 늙는다는 것, 그 잔인스러운 사실...... 시간이 내 속에서 암처럼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 이미 늦어 다시는 취소할 수 없게끔...... 시간, 바로 이거야. 저 모든 더러운 곤충들은 광명에 끌려 우리들의 횃불쪽으로 오는 거야. 저 흰개미들은 그들의 집에 끌려 그 속에서 살고 그러나 난 끌리고 싶진 않아."
(142~143쪽)

결국 무릎에 전침을 맞아서 온몸에 독이 퍼져, 페르캉은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 죽음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을 절박하게 느끼다가 최후의 순간을 맞는 순간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사실 나로서는 인도차이나 주변의 당시 상황이나, 인물들의 생각들이 그대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관념편향의 소설인데다, 전지적 시점이어서 그들의 내면과 거리를 두었기에 읽는 내내 반신반의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인간존재의 조건을 묻고자 하는 인물의 의지가 자못 숭고해 보이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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