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이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로 돌아왔다. 이른 봄에 구입하고 최근까지 묵혀두었다가 며칠 전부터 하루에 한편씩, 마침내 읽었다. 이제는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어서인지 예전보다 시선이 더욱 깊어져서, 편편 읽는 과정이 가을볕 아래 잘 여문 과실을 따는 기분이었음을 고백한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와 「탱자」, 「고래등」, 「편백나무숲 쪽으로」는 소설의 주인공의 기록이기보단, 화자와 관계 맺은 자에 대한 회고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리고 그 관계 맺은 자는 한없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돈의 팔촌 내로 꼭 한 명은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집안의 말썽꺼리일 수도 있고, 세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인물들에게 윤대녕은 관심을 보인다. 표지 뒤쪽에 신경숙의 글처럼, 그는 사소한 개인을 신화적으로 이끄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어떤 이의 일생도, 윤대녕을 거치면 거대한 인류의 흐름 속에 자리잡은 하나의 역사로 치환되고야 만다. 그것이 윤대녕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제비를 기르다」는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빛의 걸음걸이」나 「천지간」, 「상춘곡」에 비견될만큼 한 가족의 일생을 서사로 담담히 풀어놓고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제비에 온통 마음을 뺏겨버린 어머니로 인해 가슴 속에 상처를 갖고 있는 아들은,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 가출했다가 하루만에 아버지에게 붙잡힌 채 끌려가 마주쳤던 “문희”라는 술집의 여인을 마음에 두게 된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군대에서 전역해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한 여학생을 만나고 연정을 품게 되는데, 그의 이름도 문희였다. 하지만 문희는 군에 간 남자친구가 있었고 결국 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훗날, 문희라는 작부집에 다시 찾아가지만 어릴적의 문희는 이미 할머니가 되었고, 그 앞에서 주인공은 끝내 오열한다.
약간 해묵은 감정도 느껴지고, 「은어낚시통신」의 “상처에 중독된 사람”처럼 자의식 과잉의 대화도 거슬린다. 게다가 제목도 그닥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비에 어머니를 빼앗겨버린 한 소년의 심정은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곡진함에 독자들은 감동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아쉬워하고 있을까. 그에 반해 「탱자」는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고모의 제주도 방문이라는 소재로 한 인간의 내력을 잘 전하고 있다. 그리고 회피할 수 없는 부정(父情)이란 테마를 잘 그려낸 「편백나무숲 쪽으로」와 「고래등」도 좋다.
하지만 실로 내가 좋아하는 윤대녕의 소설은 「연」, 「낙타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처럼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는 인물들을 다루는 소설들이다. “인간의 삶에는 어느 순간 균열이 찾아올 수 있다”고 얘기하던 소설이 초창기 윤대녕의 주된 테마였다면, 최근의 작품에서는 그 틈이 벌어졌을 때도 하루하루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그런 변화가 보다 더 성숙한 시선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 끝에서. 결국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소설적 인식은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견딜만하게 해주는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