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정의하기를, "자정"이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요란했던 근대 이후"의 시간이란다. 이 소설집은 소설이 "그 무엇의, 혹은 그 무엇을 위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논리와는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쉽게 말해 아무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특색이 있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읽으나 마나한 소설들(좀 지나친 언사일지도 모르겠지만)ㅡ특히 <두유전쟁>ㅡ을 보면 뭐라고 해야할지 초난감(!)하다. "머리 굴리지 말고 읽기나 하시지" 같은 포즈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할만한 작품은 있으니, <물 속의 아이>와 <진실의 방으로> 두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의 방으로>는 이야기를 단순화한 감이 있어서 소설에 과연 적합한가 싶지만, 또 어떠한 것도 소설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용인 가능한 범주였다. 한편 <물 속의 아이>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의 욕구를 아주 잘 담아내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읽힌다. 미성숙한 존재의 성숙해가는 과정과 그 안에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끔찍하지만 적나라한 욕망을 이야기로 썩 잘 풀어낸 사례로 보인다.
나에게 소설가 박형서는 아직 더 두고보아야 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