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자전소설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서 말이다. 8번의 린치를 겪으며 수두룩하게 맞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재미난 청춘기를 보여주고 있단 말이다. 그런 얄궂은 사건들 덕분에 그는 소설가가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기호의 두 번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문학동네, 2006)은 전반적으로 유쾌한 질주를 보여주고 있는 젊음과 치기가 착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에 신형철의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아담"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나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를 읽으면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원초적 열망이 작품에 투영된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야 말로 소설의 원류가 아니겠는가. 그것을 현대에 복원하려는 작가의 욕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여튼 <나쁜 소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픈 인간적 욕망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드러내지만, 공공도서관 열람실 한 구석에서 소설을 읽는 자신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구석으로 내몰린 소설책의 슬픔이 느껴진다. 실제로 나도 과거에 도서관에서 계간지에 발표된 이 소설을 읽었던 것이기에 더욱이나 좀 그렇다.
당신은 한번이라도 흙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해보았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을 읽으면 흙을 먹게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당신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과 같은 동네에 살아본 적이 있는가? <원주통신>에는 박경리 선생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신은 비오는 어느 밤, 방범 초소대 근처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두 명의 남자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잠든 밤에>에서는 그 둘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한밤중에 텅빈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국기게양대에 매달려본 적이 있는가? <국기게양대 로망스 - 당신이 잠든 밤에 2>를 읽으면 그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기호의 소설은 모두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것도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적잖이 황당하면서도 현실에서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이야기의 향연이다. 키득거리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만드는 게 이기호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에서 행해진 일련의 실험들로부터 재기는 있지만, 이야기 구조가 단선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이번 소설집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쁜 소설>이나 <수인(囚人)>,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에서처럼 이야기의 본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쓰기 과정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약간의 우려에도 그에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차 어떤 소설 세계를 그려낼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늘 그의 소설이 궁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