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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sgp1221님의 서재
  • 글쓰기를 철학하다
  • 이남훈
  • 16,650원 (10%920)
  • 2026-01-09
  • : 1,080
문자만 안다고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건 아닌 것을 모두가 글을 쓰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처럼 나 스스로 착각할때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보세요˝ 라는 정신과 의사들의 조언에 펜을 들고 자판을 쳤을때, 무슨 이야기를 썼나 싶을정도로 중언무구한 나열식 글이 나오곤 한다. 서평처럼 무언가 대상이 있어서 하는 것 좋지만, 자유롭게 쓰세요 하면 한번도 맘에 든 적이 없는 것이다. 결국은 CBT앱 1년치 구독을 했고, 사실 어쩌다 한번씩 쓰는 중이다. 그처럼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도 정리를 못하면서 어릴적 글쓰기 상을 받기도 한 (노올랍게도) 내가 글쓰기에 대해 아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엇다.

아 내가 너무 쉽게봣구나

나는 나열했을 뿐이구나

모든 속을 갈아넣어야 비로소 내 마음을 알 수 있으며, 누군가에 보여주기보단 내 마음을 적기 위해 신청했던 책, 그 시작의 기준을 알 수 있어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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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자유로운 글쓰기의 시간이 흐르고 퇴고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면, 반대로 자신의 모든 권능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로서 반추해야만 한다. 어쩌면 왕이 되어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하다가, 갑자기 평민이 되어 왕이 해 놓은 일을 평가하는 일과 비슷하다. 퇴고는 곧 자기 성찰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퇴고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는 소크라테시의 말에 부합하기도 한다. 이렇게 늘 성찰하는 과정이 몸에 벤 사람은 자신에게 아무리 권능이 있더라도 결코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겸손함을 갖추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러한 독특한 위상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던 사람이 바로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세계문학전집에 빠짐없이 포함되는 《마담 보바리》를 쓴 작가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 작가는 그의 책 안에서 우주에 있는 신과 같아야 한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한마디로 지극한 겸손의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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