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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자리에 태워줘
  • 애덤 마스-존스
  • 13,050원 (10%720)
  • 2026-06-10
  • : 1,725
말장난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상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콜린과 레이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방성이다. 이 종속 관계는 첫 만남부터 형성된다. 나무에 기댄 채 발을 쭉 뻗고 누워 있던 레이, 그리고 그의 발에 걸려 넘어진 콜린. 콜린은 레이의 조각 같은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곧 다른 부위로 시선을 옮긴다. 레이는 자신만만한 비웃음과 함께 범상치 않은 일체형 가죽 슈트의 지퍼를 부욱 내리고, 어리둥절한 콜린에게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연달아 보여준다.



그렇게 콜린은 레이에게 빠진(fall for)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fall over). 파도처럼 밀려와 풍덩 빠진 사랑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낭떠러지로 떨어져 상대를 우러러보게 된 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 BDSM은 명확한 동의와 협상,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6년 동안 경험 많은 성인이 순진한 소년에게 보인 행동에서는 그런 절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의미의 일방성은 이야기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난다. 소설이든 영화든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레이는 바이크 클럽의 리더답게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자신의 바이크를 빈틈없이 세차한다. 2층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콜린. 레이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눈치챘을 테지만, 한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 않는다. 콜린은 그 의도적인 무시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안도감과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 거리감과 수치심이 콜린에게는 관계의 핵심이다. 그는 레이의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정작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근위병처럼 흔들림 없는 그가 윙크라도 한다면, 직업이나 가정환경 같은 사적인 면을 알게 된다면, 미천하고 못생긴 자신을 선택해 준 레이라는 황홀한 존재감이 무너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지 못하는 화자 콜린은 레이의 심리를 끝없이 추측하고, 자신의 자기연민을 끊임없이 해설한다. 그 과정 자체가 그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홀로 나이 든 그는 비로소 둘의 관계를 다른 방향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역전까지 이루는, '상호 일방적인' 관계처럼 읽혔다.



저자는 이 작품을 진실된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진실은 무엇일까.



사랑은 달콤한 감정보다 어떤 사건에서 촉발되는 것에 가깝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욕망은 타인을 통해 발견되고, 학습되며, 어느새 삶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레이의 가죽 옷들처럼 가장 솔직하다고 믿었던 욕망조차, 사실은 자신의 못남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일 수도 있다. 그럼 껍데기 욕망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레이에게는 그 가죽 재킷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했고, 콜린은 바로 그 역할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렇다면 6년간 이어진 그들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편 우리는 기꺼이 거짓된 모습에 현혹되고,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서사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진실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실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원처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어느새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변해 서로에게 독성 짙은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 결과 인생의 한 부분은 존재론적 불안으로 물든다. 콜린의 부모처럼 말이다. 그 불안을 인정하고, 밑동까지 한 번 잘라내는 경험을 거쳐야 비로소 삶의 다른 부분들이 새롭게 자라고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주절주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쨌든 수치심에서 흥분을 찾는 서브미시브처럼, 가장 못난 러브스토리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내게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웠다. 물론 윤리적으로 뜨악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권력과 복종을 다루는 이야기에 회초리를 들이대며 재단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일처럼 느껴져,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읽었다.



영화의 팬이라면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일반 독자 역시 자존감 낮은 화자의 구구절절한 자기연민과 상대를 숭배하는 주접에 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뜻밖의 공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대담한 러브스토리를 찾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뒷자리에태워줘 #뒷자리에태워줘원작



말장난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상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콜린과 레이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방성이다. 이 종속 관계는 첫 만남부터 형성된다. 나무에 기댄 채 발을 쭉 뻗고 누워 있던 레이, 그리고 그의 발에 걸려 넘어진 콜린. 콜린은 레이의 조각 같은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곧 다른 부위로 시선을 옮긴다. 레이는 자신만만한 비웃음과 함께 범상치 않은 일체형 가죽 슈트의 지퍼를 부욱 내리고, 어리둥절한 콜린에게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연달아 보여준다.



그렇게 콜린은 레이에게 빠진(fall for)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fall over). 파도처럼 밀려와 풍덩 빠진 사랑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낭떠러지로 떨어져 상대를 우러러보게 된 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 BDSM은 명확한 동의와 협상,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6년 동안 경험 많은 성인이 순진한 소년에게 보인 행동에서는 그런 절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의미의 일방성은 이야기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난다. 소설이든 영화든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레이는 바이크 클럽의 리더답게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자신의 바이크를 빈틈없이 세차한다. 2층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콜린. 레이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눈치챘을 테지만, 한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 않는다. 콜린은 그 의도적인 무시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안도감과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 거리감과 수치심이 콜린에게는 관계의 핵심이다. 그는 레이의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정작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근위병처럼 흔들림 없는 그가 윙크라도 한다면, 직업이나 가정환경 같은 사적인 면을 알게 된다면, 미천하고 못생긴 자신을 선택해 준 레이라는 황홀한 존재감이 무너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지 못하는 화자 콜린은 레이의 심리를 끝없이 추측하고, 자신의 자기연민을 끊임없이 해설한다. 그 과정 자체가 그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홀로 나이 든 그는 비로소 둘의 관계를 다른 방향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역전까지 이루는, '상호 일방적인' 관계처럼 읽혔다.



저자는 이 작품을 진실된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진실은 무엇일까.



사랑은 달콤한 감정보다 어떤 사건에서 촉발되는 것에 가깝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욕망은 타인을 통해 발견되고, 학습되며, 어느새 삶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레이의 가죽 옷들처럼 가장 솔직하다고 믿었던 욕망조차, 사실은 자신의 못남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일 수도 있다. 그럼 껍데기 욕망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레이에게는 그 가죽 재킷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했고, 콜린은 바로 그 역할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렇다면 6년간 이어진 그들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편 우리는 기꺼이 거짓된 모습에 현혹되고,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서사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진실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실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원처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어느새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변해 서로에게 독성 짙은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 결과 인생의 한 부분은 존재론적 불안으로 물든다. 콜린의 부모처럼 말이다. 그 불안을 인정하고, 밑동까지 한 번 잘라내는 경험을 거쳐야 비로소 삶의 다른 부분들이 새롭게 자라고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주절주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쨌든 수치심에서 흥분을 찾는 서브미시브처럼, 가장 못난 러브스토리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내게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웠다. 물론 윤리적으로 뜨악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권력과 복종을 다루는 이야기에 회초리를 들이대며 재단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일처럼 느껴져,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읽었다.



영화의 팬이라면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일반 독자 역시 자존감 낮은 화자의 구구절절한 자기연민과 상대를 숭배하는 주접에 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뜻밖의 공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대담한 러브스토리를 찾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뒷자리에태워줘 #뒷자리에태워줘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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