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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박훈
  • 19,800원 (10%220)
  • 2014-07-07
  • : 2,137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의 후속편 같은 느낌이다. 즉 후자가 메이지유신으로의 길을 연 사무라이들을 소개한다면 전자는 어떻게 그들이 메이지유신을 성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일본이 위기 속에서 급속한 서구화를 통해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평하지만 박훈 교수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그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한 메이지유신은 중국과 조선에서 유행하던 유학의 영향을 받은 사무라이들이 ‘사화(士化)‘함으로써 성공의 길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한 가지 요인만 중요했다고 평하지는 않는다. 18~9세기를 거치면서 일본 사회에 유학이 확산되고 사대부적 정치 문화가 형성됨으로써 사무라이들이 ‘학적(學的) 네트워크’를 결성한다거나 상서(上書)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무라이들은 군주의 친정을 요구한다거나 좀 더 넓은 세계관 등을 형성하게 되었는 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메이지유신이라는 놀라운(?) 혁명을 성공하게 되었다. 이런 주장은 기존의 개설서나 교과서에는 전혀 실리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메이지유신을 추동하고 설계한 이들이 사무라이들이었으며 이들이 유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왜 유학이 부흥한 중국과 조선은 식민지의 길을,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을까? 앞 두 나라는 유학에 얽매여 사회는 보수화되고 쇄국이라는 극단의 길을 반면, 일본에서의 유학은 일종의 도구여서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극단화하지 않았다. 즉 일본은 유학에서 배운 바대로만 살지 않았며 이를 서구화에도 적용하였고 또한 주체적으로 나아갈 바를 체득하여 근대화에 성공한 것이다. 메이지유신을 모두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 속에도 부정적 요소는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게 된 배경만큼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조선의 많은 근대 지식인들이 그렇게 부러워하고 배우고 싶어했던 메이지유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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