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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 김현수
  • 13,500원 (10%750)
  • 2020-11-15
  • : 2,112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늘 ‘어른들‘의 관점에서 주도되고 실행된다. 많은 교육정책들 가운데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늘 ‘어린‘ 학생들을 위한다는 목표 아래 마음대로 교육정책들을 주물러 왔다. 여기에 나 역시도 교육자로, 학부모로 한몫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부끄러움이나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교육의 주체이며 현장 책임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며 교육부에서 엄청나게 많은 교육정책들을 쏟아냈다. 온라인수업이라는 미명 아래 새로운 수업 방식들이 논의되었고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다. 현장의 상황은 멘붕 그 자체였다. 일부 적극 상황에 대처하여 빠른 시간 안에 정상(?)을 찾은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은 처음 접하는 상황에 우왕좌와 그 자체였다. 생경하고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쌍방향수업과 단방향수업(콘텐츠중심수업)이라는 개념이 교사들에게 주입되었다. 거부할 수 없는 강요이자 의무였다.

이때부터 교사들은 생존과 학생들을 위한 의무감에 ZOOM, 구글 클래스룸, MS팀즈, 온라인클래스, e학습터, 위두랑 등의 프로그램과 학습플랫폼을 집중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영상편집과 유튜브 활용 같은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는 교사들도 생겨났다. 관련 연수가 지원되었고 스스로 유튜브 선생님을 통해 학습하는 분들도 생겨났다. 교육부-도교육청-교육지원청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공문들에 교사들은 거부할 수 없었다. 시대적 요청이자 요구이기에 받아들여야만 했다. 교육정책들에 교사단체들이 조언하기는 했지만 그들 대표와 교육부장관의 일회성 만남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장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쓴 것은 교육관련 부서나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사들의 목소리를 교육정책에 반영해야하자는 것도 아니다. 지옥과도 같은 작년의 혼란의 거쳐오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이 있다. 그것은 이 글의 앞부분에 간접적으로 언급했던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다. 과연 현실에서는 교육관료들의 하향식 정책과 여기에 반발하는 현장의 목소리만 있었다. 일부 학부모 단체의 주장도 있었으나 그리 크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학생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무조건 그들의 의견을 대변해줄 따름이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은 위와 같은 피해망상적 생각에 빠져 있던 나를 쎄게 때렸다. 어른들이 판단하고 어른들이 결정내린 것들은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어른들은 학생들의 ‘학력‘을 무척이나 걱정했다. 교육부도, 교사도, 학부모도 오로지 학력저하만을 걱정하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학교에서 수립한 각종 계획서들도 결국 수업을 어떻게 하나하는 문제와 연결될 뿐이었다.

과연 초, 중, 고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일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코로나19를 통해 학력의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이 있다. 그것은 ‘관계‘의 실종이다. 10대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만남을 통해 학습력이 증대되고 효과도 개선된다. 우리는 이를 이미 많은 실험과 교육개론서들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학생이 가장 아파하는 관계의 문제를 우리를 놓치고 그들에게 학력의 문제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의 가려운 곳은 못 보고 엉뚱만 곳만 긁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이는 교육관계자 모두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잃어버릴까 봐 두려한 것은 학습이 아니라 관계였습니다.(71쪽)˝

그렇다고 관계를 친구와의 만남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 학교나 지역사회의 행사 취소는 관계 단절을 넘어 세대의 단절을 불러올 수 있다. 선후배 간의 교감, 지역 이해를 돕는 행사들이 취소됨으로써 관계의 단절은 심화되었다. 아울러 취약계층 및 특수학급의 아동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역시 줄으든 것 역시 사실이다.

책에는 위의 너절한 주장들을 이렇게 간단히 정리한다. 첫째, 어른들끼리만 이야기하고 결정했다(성인 중심 담론). 둘째, 어른들의 걱정은 오로지 학력 뿐인가?( 학력 중심 담론). 셋째, 학생들은 통제의 대상이기만 한가?(통제 중심 담론). 넷째, 돌봄은 부담인가(부담 중심 담론). 이 시대의 교육의 문제를 잘 지적했다고 본다. 교육의 중심에 있는 이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었다. 분명 2021년도 교육정책에는 반영이 필요한 대목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정답‘을 주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일러준다. 그점이 이 책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상위기관도 학교도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저자 김현수의 시선은 참 따뜻하다. 그 어디를 비난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차분히 일러주고 문제 상황들을 다방면에서 접근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런 그의 마음 씀씀이가 부럽다. 교육자보다 더 교육자같은 의사 선생님에게 감동한다. 아니 그의 언행을 통해 보건데, 그는 교육자의 교육자요 학생들의 위로자임에 틀림없다. 그의 저작들이 한결같이 이를 증명한다.

아래는 책의 한 대목이지만 우리집 분위기와 묘하게 비슷하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앉으라고 하고
앉아 있으면 스마트폰 보지 말라고 하고
스마트폰 보지 않고 있으면 멍때리면서 
뭐 하냐고 하고
책을 꺼내 보면 잠시 뒤에 와서 보고는
아까 보던 페이지를 지금 30분째 보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해서
제발 관심 좀 끊으라고 하면
부모가 어떻게 관심을 끊냐고 소리치고,
결국 빡쳐서 소리 지르고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려고 하면
이런 잔소리를 부모가 아니면 누가 하냐고  하면서
이렇게 살아서 어떻게 할 거냐고
어딜 나가냐고
하는 생활의 반복이 정말 고역이에요.
정말 이러다 코로나가 사람 죽일 것 같아요.
학교가 이렇게 고마운 조직인 줄 몰랐네요.
사람을 살리는 곳이 학교네요.˝
(4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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