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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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HOUSE님의 서재

아무 생각 없이, 맥도날드,롯데리아,KFC와 같은 패스트푸드 점에 자주 가곤 했다. 늘 가서 먹으면서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가격도 비싼데다, 양이 적어서 항상 불만이었다. 음식의 품질도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찬 맥도날드를 보면 신기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다른 어떤 음식점보다 자주 가는 음식점들 중 하나가 패스트푸드점인 것이 현실이다. 난 개인적으로 4000원을 넘는 햄버거 세트 메뉴보다 분식집에서파는 제육볶음, 순두부찌개와 같은 음식이 훨씬 더 좋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맥도날드는 싸구려로 생각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이미지인데다가 가격도 다른 음식들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않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음료수와 같은 패스트푸드의 판매를 주로 하는 회사이다. 맥도날드보다 더 대중적인 패스트푸드점이 있을까? 맥도날드는 없는 곳이 없다. 본고장인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맥도날드는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119개국에 3만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일 5천만 명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맥도날드는 분명 매우 유명한 패스트푸드 점이다. 그렇다면 대체 '맥도날드화'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저자는 무슨 왜 이런 표현을 쓴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저자가 아래와 같이 하고 있다.

"내가 맥도날드에 대해 특별히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밝혀두어야겠다. 맥도날드는 다른 패스트푸드점과 합리화 과정의 표현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여기서 이와 관련된 과정을 '맥도날드화'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맥도날드가 이런 과정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것들--'버거킹화', '세븐일레븐화', '퍼드럭케리화', 'H & R 블록화', '킨더 캐어화', '지피 윤활유화', '뉴트리/시스템화'--보다 맥도날드화라는 편이 더 듣기 좋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맥도날드화는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점의 규격화·편리성·효율성 등의 원리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과정과 그것이 초래하는 불합리성을 말한다.

책에서 맥도날드 외에 다른 예로 든 것이 바로 KFC이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설립자인 Harland Sanders 대령의 조리 기술과 양념비법은 엄청난 성공을 가져와 1960년에 약 400개에 달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두게 된다. Sanders 대령은 음식의 질, 특히 육즙에 심혈을 기울였다. 샌더스 자신에게 요리예술의 최고 요소는 그가 오랜 시간과 인내를 통해서 얻은 향료식물과 양념을 섞어 만든 육즙만 먹고, 그 빌어먹을 닭고기는 버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64년에 샌더스가 사업체를 처분한 후 사업주들의 관심은 질이 아니라 속도였다.

"대령의 육즙이 환상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너무 비쌌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패스트푸드가 아니었다."

Sanders 대령은 말했다. "그 망할 놈의 일당들...... 바로 그 놈들이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을 모두 망쳐놓았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내 육즙을 그 망할 자식들이 멋대로 줄였다, 늘였다, 물을 들이부었다 했지. 정말 미칠 노릇이더라고."

좀 씁쓸한 이야기이다. 맛이 좋아 번창한 KFC가 지금은 맛이 아닌 조리 속도를 등에 업고 번창하고 있다. 하지만 KFC 홈페이지에 가 보았더니 ‘그 후 9년 이상의 기간동안 11가지 맛좋은 양념을 완벽하게 완성시켰으며, 그 비법은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라고 거짓으로 소개되어있다. 우리가 맛본 KFC의 맛은 원래 KFC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바로 그 맛이 아니었다.

분식집에서는 밥을 오랫동안 지어오신 아주머니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신다. 밥을 짓고, 양념을 만들고, 지지고 볶고 비빈다. 음식 솜씨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음식점마다 다른 개성 있는 맛을 보여준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은 항상 비슷하다.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는 만들기가 쉽다. 그래서 숙련되지 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만든다. 라면 밖에 끓일 줄 모르는 10대 혹은 20대 초반들이 많다. 종업원들은 공장의 조립라인 앞에 것과 같다. 따라서 매우 효율적이다. 정해진 일을 몇 가지만 하면 제품이 나온다. 간단하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에서 먹는 거랑 똑같은 질의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을 수 있다.

분식집 가면, 먹고 나서 그릇을 식탁에 놔두고 그냥 나오면 된다. 맥도날드에서는, 내가 치워야 된다. 맥도날드는 은근 슬쩍 이런 일들을 고객에게 부담시킨다. 왜냐하면 손님이 직접 치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것을 알면서도 패스트푸드점은 나날이 번창하는 것일까?

분명 같은 가격으로 더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 하지만 더 좋지 않은 곳도 있을 수 잇다. 사람들은 익숙한 분위기에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 보통 모험을 싫어하고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맥도날드는 어디에나 있기에 익숙하다 그래서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도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좋지 않은 품질의 음식과 스스로 뒷정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한다.

분식집은 잘못 들어가면 굉장히 불친절하다. 어떻게 이런 집이 계속 장사를 하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같은 가격을 주고도 어떤 곳은 굉장히 맛있는데, 어떤 데는 별로다. 하지만 맥도날드의 종업원도 항상 친절하다. 교육을 잘 받은 종업원이 들어갈 때 마다 "어서오세요“라고 하며 반갑게 반겨준다. 있는 매장이나 서울에 있는 매장이나 전혀 낯설지 않다.

이런 환영받는 분위기와 늘 보던 편안함, 그리고 혹시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날려주기에 사람들은 맥도날드로 달려간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푹신한 쇼파를 준비해 두지 않는다. 일부러 불편한 의자를 고수한다. 바로 판매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빨리 먹고 나가야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어떤 곳은 20분 이상 앉아있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기업 편의적인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그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음식점도 다 특성이 있는 법이니 패스트푸드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은 음식의 본질적 요소인 음식의 질적인 발전보다는, 그 외적 요소를 더 중시하는 것이 문제다. 패스트푸드 - 말 그대로 빠르게, 기다릴 필요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서비스가 더 좋아서, 익숙한 것이라서, 그 외의 다양한 기업의 농간에 말리는 것이다. "기업과 효율"이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속아 넘어가고 있다.

과연 우리가 맥도날드를 선택해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업 전략에 말려들어가는 것일까?

TV가 광고로 먹고 살고, 그래서 시청률을 엄청 신경 쓴다는 것은 알 것이다. 채널의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 '하하~ 시청자는 왕이다. 방송국은 우리 눈치를 볼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는 것 중 많은 것들은 오히려 배급 받는 것이다. 결정해서 배급한 몇 가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사람이 눈높이를 낮출 수는 있어도, 낮은 수준의 사람이 높이기는 힘들기 때문에, TV프로그램은 주로 중학생 수준의 시청자를 생각해서 만든다. 우리는 중학생 수준의 프로그램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TV를 보게 된다. 방송국의 배급 속에서 만이 우리의 선택이 가능하다. 미국의 한 TV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시청자가 지출을 거의 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 농부 등이라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폐지했다고 한다.

왜일까?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 사람들이 봐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광고하는 물건을 살 수 없는 사람은 아무리 TV를 봐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물론 방송국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되는 건 이해하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못하다.

책저자는 이런 맥도날드화를 두고 합리성의 비합리성, 비인간화라고 표현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말로가 Sanders 대령이 세운 KFC와 같은 말로 - 질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 를 걸을지도 모른다.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기업, 사회구조가 모두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리지 않을지.

합리적인 것은 좋다. 하지만 너무 합리적인 것만 찾다보면, 언젠가는 인간성을 찾아야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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