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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na님의 서재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엄마는 언제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엄마가 다른존재를 딱하게 여긴 적은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딸인 나조차도 엄마 세계에서는 엄마를 불쌍하게만든 가해자였다. - P12
"양심을 속이면 반드시 벌을 받게 돼 있어."
남은 속여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을 테니, 그 가책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거라고. 수업 중에도 한정철은 자주 이랬다.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소리를 쓸데없이 길게 늘어놓곤 했다.- P17
엄마와 나 사이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중요한 것은 질문 금지. 엄마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 이 룰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질문을 참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쉽다.
엄마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러니까 엄마의 마음을 알아채기가 의외로 어렵다. 엄마는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무리 궁금해도 눈치껏 엄마가 대답하지 않을 것 같으면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했다가는 며칠간 냉랭한 엄마와 함께해야 하므로 여간괴로운 게 아니다.- P40
"엄마, 내가 아무 짓도 안 하고 맞았음 어쩌려고?"
엄마는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를 켰다. 나는 꼭 듣고 싶었다.
"내가 가만있는데 맞은 거면, 엄마가 싸워줄 거야?"
"엄마가 싸우긴 왜 싸워."
"만약에 말이야, 가정을 해보자는 거잖아."
"맞았으면 맞을 짓을 한 거야."- P81
순간, 선배의 다리가 정지했다.
"너는 양심이라는 게 아예 없구나?"
나는 양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재능이 있는 거야. 속아넘어간 선배는 재능이 없는 거고.- P135
최리사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테이블에 엎드려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뒷말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김승완에게 이미 들었으니까. 정말 웃기고들있네. 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최리사의뒤통수를 바라보며 짜증이 확 치밀었으나 바로 생각을고쳐먹었다. 짜증낼 게 아니라 고마워할 일이라고. 최리사가 물러터진 성격이라 일을 쉽게 끝낼 수 있었다. 시효는 만료되었고 최리사는 김승완을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날 변민희가 가게에 갔었다는 김승완의 증언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최리사의 눈물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최리사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커다란 미소로 반겨주었다.- P225
"야, 그딴 건 별것도 아냐. 너 낳고 키운 거에 비하면."
변민희의 죽음은 조금 전까지 변민희 아빠의 탓이었다가 이제 내 탓이 되었다. 책임을 떠넘긴 엄마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손을 뻗어 엄마의손을 잡았다. 내 탓 하지 말라는 그 간단한 말은 왜인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P233
공부방 선생님 요즘 좀 이상해. 엄마한테 뭐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선생님 험담부터 하는 걸까.지율이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멋도 모를 때는 말려들었지만, 이제는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잡고 다른 손으로 다희 핸드폰을 꺼내 지율이 앞에 들이밀었다.
"엄마한테 할 말 없어?"
지울이는 크게 놀란 듯했으나 이내 자신의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율이가 이렇게 만든거잖아. 아니야?"
"아닌데? 내가 왜?"
당돌한 반응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 머리통이 저릿했다.
"지율아. 왜 그랬어?"
"아니라니까? 선생님 말 듣고 이래? 증거가 있대?"
"어."
지율이가 행동을 멈추는게 느껴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공부방 선생님이 시시티브이를 보여주시더라. 복도에 있는."
순간, 지율이가 다희의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창문을열고는 밖으로 던졌다. 나는 너무 놀라 브레이크를 밟아버렸고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빵, 뒷차가 요란하게클랙슨을 울리며 지나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것처럼 요동쳤다. 핸들 위에 놓인 손이 덜덜 떨렸다. 급히 핸들을 돌리며 백미러로 살펴보니 다희의 핸드폰은이미 파편이 되어 아스팔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동안 지율이는 창문을 올리고 시트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건 이제부터 내가 어떤 질문을 해도 답하지 않겠다는선언이었다. 질문 금지. 엄마의 질문 금지가 훈육을 흉내냈다면 지율이의 질문 금지는 반항을 흉내 냈다. 당하는입장에서 괴롭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P251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엄마."
눈을 위로 치켜떴더니 지율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손을 뻗어 지율이의 손을잡았다. 지율이가 작게 몸서리를 치는 게 느껴졌으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상태로 상체를 깊이 숙이며 지율이의 몸을 껴안았다. 테이블 넓이 때문에 버둥거리면서도어떻게든 지율이를 끌어안았다. 지율이의 온기 덕분에내 손의 한기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구체적인 감각이 이리저리 흩어지려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입 밖으로 옅은 숨처럼 제발이 삐져나왔다. 나는 간절한마음으로 나의 엄마를 쏙 빼닮은 나의 딸을, 아직은 따뜻한나의 딸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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