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씨.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지만, 그건해결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안 씨가 말했잖아. 지안씨도 이제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지.- P313
나는 그때 그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트라우마란 시간을 뛰어넘는 마음의 상처라고. 그녀는 나와 함께 그때를 마주하며, 그 일이 떠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적어나갔다. 그 사건은 상처였고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인지하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럼에도 종종 그녀는 다시 울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여기 있어야 한다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P339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함께 살아온 사람인데 남보다 멀게 느껴지는 서른넷. 생각이 이어질수록 엄마라는 사람도, 지훈 오빠도 까마득한 남처럼 느껴졌다. 그 속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 작은 일 하나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롭게 알아가야 하는 사람. 우리는 더 작은 것들을 얘기해야만 했다.- P348
큰 상실 이후의 삶은 애도다. 슬퍼하다 화를 내고, 화를 내다무력해진다. 그것들은 하나의 방향성만을 띠지 않는다. 서로를오가고 이내 받아들인다. 시간이 짧든 길든, 받아들여야 살아갈수 있다.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그것이 애도고,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알아야 했다.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던 숱한 날들이 스쳤다. 언제라도 돌아올 거라는 헛된 희망. 떠나지 않았다고, 부여잡고 싶은 어린 마음.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아내려 슬퍼해야 했다. 내가 만나온 사람들처럼, 처절하게 울어야 했다. 눈물이 툭 터져 나왔다. 속에서 응어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녹아내리는 눈물이었다.- P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