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동안 맡아달라고 하지?
원하는 만큼 데리고 있으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면 돼? 아빠가 말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말해. 어차피 늘 그러잖아.- P15
나는 아빠가 후진시킨 차가 진입로로 나간 다음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바퀴가 캐틀그리드를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어를 바꾸는 소리,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왜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없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을까? 마당을 가로지르는 묘하게 무르익은 바람이 이제 더 시원하게느껴지고, 크고 하얀 구름이 헛간을 넘어 다가온다.- P21
"불쌍하기도 하지." 아주머니가 속삭인다. "네가 내 딸이라면 절대 모르는 사람 집에 맡기지 않을 텐데."- P34
"주말에 널 데려다 달라는구나, 옷도 준비하고 해야 한다고."
"그럼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렇지만 너도 알고 있었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편지를 본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여기서 영영 살 수는없잖아."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불을 빤히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애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P79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P96
내 발이 진입로 중앙에 풀이 지저분하게 자란 부분을 따라 달리며 울퉁불퉁한 자갈을 세차게 밟는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고,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아저씨는나를 보자마자 딱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 든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