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고전문학 책들은 유독 작가의 사진이 실린 경우가 많다. 때론 작가의 사진이 독서에 방해가 될 때도 있곤 한데 어쩔 때는 작가와 만나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더 좋을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헤르만 헤세는 유독 따스하고 섬세한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책에서 느꼈던 사춘기 소년 같은 풍부한 감수성과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섬세함은 생각했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헤르만 헤세도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으셨던 것 같다.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눈부신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조국 독일에 대항해서 반전 운동을 펼치면서 같은 독일인들에게 온갖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면에서는 아내는 정신병을 앓았고 헤세 자신도 예민한 감수성 탓에 어렸을 때부터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등, 힘겨운 일생을 보냈다.
그런 그가 타고난 예민한 감수성을 어떻게 보듬고 행복을 향해 나아갔는지 이런 에세이가 없었다면 아마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이 실렸다는, <삶을 견디는 기쁨>이라는 제목의 책은 그래서 너무나 궁금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헤세는 인생에 한 번쯤 느낄법한 고독과 슬픔, 외로움과 좌절과 같은 감정들을 나의 이야기인듯도 하지만 너에 대한 걱정으로 보내는 편지처럼 담아내고 있다. 고통을 이겨내고 견디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걱정없이 주변의 아름다움을 둘러보는 것, 슬픔의 끝까지 침잠해보는 것, 남들과 다른 것에 동요하지 않고 나만의 행복의 비결을 찾아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결국 내 말의 핵심은 '절제'이다. 굳이 어느 오페라 공연의 초연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간지를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나는 유행이나 관습에 휠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몇 알고 있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들은 그런 용기를 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분주하게 앞으로만 나아가다가 진정한 나를 돌아보고 나의 행복을 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현대시대에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헤세는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고 말한다. 예술가들만이 지닐 수 있는 감수성, 극한의 예민함, 불면의 밤들, 경험하지 않아도 될 고통과 번뇌, 삶에 대한 끊임없는 애증, 일반적인 이성과 규율의 통제를 벗어난 생각까지도 예술가에게만 주어진 거부할 수 없는 하늘의 선물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쩔 때는 이러한 상념들의 고백이 안쓰러워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세상이 끊임없이 나를 파괴하려 들고 나를 고립시키려고 할 때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지, 심지어 생과 사의 기로에까지 설 때 그 선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할 내밀한 얘기를 그와 나누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의 글 곳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문학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도 끼친 니체의 영향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마음 속 은장도처럼 품고 다니는 말을 똑같이 하시는 바람에 이 부분에선 살짝 놀라버렸다. 그외에도 중간중간 한참이나 멍하게 만드는 글들이 많았다.
일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몰이나 일출이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먼저 위와 아래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지구에 위와 아래는 없으며, 그것은 착각의 근원지인 인간의 뇌 속에나존재할 따름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모두 착각이다. 흰색과 검은색도 착각이고 삶과 죽음도 착각이며 선과 악도 착각이다. 당신에게는 일몰로 보이는 것이 내게는 일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 두 가지 모두 착각이다.

그리고 더욱 좋았던 것은 곳곳에 실린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었다. 아름답게 담아낸 그의 풍경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얼마나 삶과 세상을 사랑했는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삶에 슬픔 한방울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