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함은 때때로 사람들 사이에 놓이는 물건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졌다.
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발표자와 질의자로 나뉘면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발표자로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날카로운 질문들때문에
갑판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때로는 잔털 채 올라온 당근처럼 서늘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밑에서 느끼지 못할 바람과 땅밑에서 보지 못할 따스함때문에
기꺼이 그들의 혀에 안기는 부끄러움과 과감함을 고사 叩謝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무 탁자를 촘촘히 붙인 자리로 옮겨가자 느끼게 된 분위기 탓이었다.
좀더 친밀한 대화 속에서 길에서 느꼈던 소통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이들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 부족한 언어 때문에 쩔쩔 맬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저 알고자 하는 나의 열망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면 되었고, 애쓰는 아이들의 노력이 나의 가슴에 닿도록 집중하면 되었다. 그래서 모르는 명사는 모두 “이, 그, 저” “요기 조기”가 되었고, 나는 완전히 말을 배우는 5살배기가 되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거 모라고 하니? 수첩에 적어 줄래?” “뭐?” 그림까지 그려주고 내가 발음 한번 할 때 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셔브Cheveux(머리)?” “아뇨.” “슈보Chevaux(말)?” “아닌데.” “그게 아니고, 발목이요 셔비Cheville(발목)” 재미 있어 죽을 지경이었다. 비슷비슷한 복모음 발음이 문제였다. 발꿈치Talon 안경Lunettes 같은 생존 단어들을 배우면서, 아이들이 참으로 내가 겪는 어려운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 고마워 가슴이 뭉클했다. 이것이 프랑스인들의 뿌리 깊은 앙가쥬망Angagemant 즉 사회 참여의식의 토대가 되는 듯 하였다. <말배기>의 천진함이 아이들로 하여금 사람에게 쉬이 다가서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의 도보 여행기> 중에서
11기 글쓰기 참가자 여러분들과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과 MD 박태근 님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