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2
rp3ts4vuwu님의 서재
  •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 11,700원 (10%650)
  • 2022-03-27
  • : 9,004

당신이 원하는 마법이 깃들여 있는 빵이 당신의 눈앞에 있습니다. 자유의 의지를 가진 손을 이용해 빵을 쥐어 먹을 수도, 양손을 이용해 트위스트를 만들어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도, 한 입 크게 베어 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빵을 먹음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는 오롯이 당신의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당신, 빵을 먹을 준비가 되었나요?

*

인적이 빈번한 아파트 단지에서 100미터나 멀어져야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 인근에 위치한 위저드 베이커리. 24시간 내내 밝은 불을 켜두고 언제라도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된 것처럼 빵을 굽고 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이곳에 들러 빵을 구매하기 위해 매대를 둘러보는데 계산대의 여자아이가 재료를 설명해 주려 하자 점장이 말린 간, 고양이 혓바닥, 라푼젤의 머리카락의 비듬 등 누구도 믿지 않을 것들을 언급하며 그 재료들로 만든 빵들이라는 말을 한다. 어이가 없어진 주인공은 결국 가장 무난해 보이는 모닝 롤을 들고는 재료를 듣기도 전에 돈을 두고 가게를 나와버린다. 동질감과 함께 이상한 일을 겪었다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다가 우두커니 멈춰 선다.

사실 주인공에게는 병이 있다. 눈에 들어오는 글자를 읽거나 글을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생각을 매체 없이 바로 말로 하려고 할 시에 말을 더듬게 된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제대로 답하지 못해 선생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이 병인 듯 병 아닌 애매한 병은 주인공을 강제적으로 고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 점에서 주인공은 점장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우리 둘 다 정상인의 범주에 속한다,라는 생각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인 주인공, 새어머니인 초등학교 교사 배 선생, 그의 딸인 여덟 살 무희. 이렇게 네 명은 위태위태하게 재혼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무희의 속옷을 빨다가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걸 발견한 배 선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위해 학원에 전화를 걸고 항의를 하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똑같다. 누가 그런 것이냐 화를 내는 배 선생이 두려웠던 무희는 손을 덜덜 떨며 주인공을 지목한다. 상황 파악이 되기도 전에 날아오는 폭력에 주인공은 도망을 시도하고, 불이 켜져 있는 베이커리 가게의 오븐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오븐을 키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빵순이','빵돌이'처럼 별명으로도 불릴 만큼 세상에 흔한 빵과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한 번쯤은 꿈꿔온 마법을 접목시켜 "위저드 베이커리"를 탄생 시켰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빵을 먹은 이후 귀결되는 결과는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인데, 손쉽게 바라온 만큼 쉽게 불어나는 형량까지 사람들은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쉽게 살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그 누가 뒤에 따라올 결과를 생각할까. 앞뒤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만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더욱 독단적이고 즉흥적이게 된다. 그러나 그 뒤에 "결과"가 따라온다면? 1부터 6까지 어느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주사위를 왼손에 들고 마법이 깃든 빵을 오른손에 든다면? 실행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에 쉽게 겁을 먹곤 하니까. 충동적으로 빵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것.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달라질 수 있다.

빵을 먹음과 빵을 먹지 않음으로 결과가 달라지듯 이 책의 결말도 달라진다. 두 가지 상황의 결말을 풀어 독자들이 다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게끔 한 작가님의 센스에 감탄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회하지 않고 그 답을 받아들인 주인공도,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점장과 파랑새의 도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법의 빵 하나로 생기는 갈림길, 발을 딛는 것마저도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 볼 주인공 같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뀐다.

한 번 더 감탄할 수 있었던 부분은 빵과 결합된 마법들이 실제로 사람들이 자주 꿈꿔 보거나 커뮤니티에 한 번쯤은 언급해 봤을 마법들이라는 것이었다. 작가님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생각의 꼬리만큼도 만나본 적 없었던 마법이었다면 이해하는 게 많은 애를 먹었을 터, 우리가 생각해 봤던 마법들이니 더욱 몰입도 잘 되고 '이것을 먹었을 때의 나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 소설로 개정된 것인 만큼 원래의 책보다 언행이 더 부드러워지고 어투도 몇몇 바뀐 부분을 찾을 수 있었는데 청소년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바꾼 게 보여 왠지 모르게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지금 이 세상은 청소년과 어른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은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다. 여전히 청소년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청소년을 이렇게 보호하고 싶다.

읽기 전까지는 "잔혹하고 차가운 얼굴을 한, 너무도 따뜻한 구원의 서사" -김이나 작사가-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도 아니고 이 말이 성립이 되는 말인가,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이 세상에 모순은 넘칠만큼 넘쳐 있고, 무덤덤함에서 나타나는 위로는 구병모 작가님만이 쓸 수 있는 특기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차가워 쉽게 손을 갖다대면 저온화상을 입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어린 장미 같은 주인공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상처를 입을까 겉으로 가시를 드러내지만 누군가 다가오면 너무나도 쉽게 가시를 저버리는 어린 장미. 이런 주인공의 곁에 있는 게 점장과 파랑새라서 따뜻한 구원이 가능했고 장미는 이제 장미 그 자체로 피어오를 수 있었다. 완벽한 표현을 적어 주신 김이나 작사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적는다.

담백한 모닝 롤처럼 다른 소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타임 리와인더를 이용해 이 책을 처음 만난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위저드 베이커리』는 앞으로도 나에게 24시간 영업 중이라는 타이틀로 책장에 꽂혀있을 것이다. 오븐을 여는 것처럼 책을 열면 글자들이 나를 환대할 것만 같다. 어쩌면 위저드 베이커리가 아파트 단지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던 이유는 주인공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니라고 말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나에게도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따라오는 결과를 책임질 수 없으니 그냥 빵만 구경하겠다.

오븐 속의 이야기는 우리 현실의 세계와 달리 따뜻하고 빵 냄새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 오븐 속으로 들어가 볼까. 신발을 신은 채로, 한 손에는 빵을 쥐고,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상태로. ON 스위치는 눌러도 좋다. 그 버튼이 우리의 시작이 된다면 말이다.

#위저드베이커리 #구병모 #창비 #소설Y #위저드베이커리리뷰대회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