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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3ts4vuwu님의 서재
  • 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구병모
  • 12,600원 (10%700)
  • 2022-03-27
  • : 5,39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저드 베이커리에는 마법이 깃들여져 있는 빵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각각의 빵들에는 사람들이 지니고 다녔을 소망들과 마법이 함께 깃들여져 있다. 그 빵을 택하는 것, 먹는 것, 이어질 결과를 책임지는 것까지 온전히 구매자의 몫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빵을 고르시겠습니까?


이 책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씩은 떠올려 봤을 '마법'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접할 수 있는 '빵'과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살면서 사람들이 많이 떠올릴 흔한 두 개의 주제와 우리 주위에서는 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세상에서는 번번이 일어나는 은근한 '가정폭력'이 접목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포근하고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일 '집'이 주인공에게는 불편하고 공기마저 침범하면 안 되는 공간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런 주인공에게 남들이 쉽게 칭하는 '집'이라는 분위기를 선사하는 곳이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이다. 24시간 내내 운영하며, 포근한 향이 가득하고, 누군가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곳.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대로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 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p. 247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결말 부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결말만을 가지고 그 결말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데 위저드 베이커리는 독특하게 두 개의 결말을 가지고 있다. Y의 상황, N의 상황. 앞의 알파벳을 보면 모두가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YES의 상황과 NO의 상황이다. 이 책은 결말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 온전히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결말을 택해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읽으며 심장이 뛰었다. 독자가 함께 만든 이야기, 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느 부분을 택해도 만족스러운 결말이 나올 거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이번에는 N의 결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지나친 주인공. 이겨냈다고 하고 싶지 않다. 이겨도 되지 않을 일들이다. 견디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무엇 때문에 Y와 N의 두 갈래 결말로 나뉘었을지는 직접 읽은 자만이 알 수 있는 특혜이다.

점장을 위해 기꺼이 몽마를 겪은 주인공의 성장 과정이 꽤나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은 말 저는 버릇 때문에 사회에서 원치 않게 도태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온 날들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지내온 주인공이 소신껏 행동한 것이 바로 점장의 몽마를 대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파랑새의 걱정에도 멈추지 않고 목숨을 걸어 그 고통을 직접 받아들인 다음 점장과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순수하게 기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점장과 눈을 마주쳤던 그 상황, 그 상황을 묘사하는 글자들의 모임을 읽으며 눈밑이 파르르 떨렸던 내 자신이 지금 다시 돌아온 듯하다.

책에는 이상하게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도 사회에서 어느 순간 지워져버린 주인공을 뜻하는 게 아닐까. 모두에게 걔, 아니면 아들, 등등 이름이 아닌 다른 단어들로 치환되어 불리는 주인공을 직면하여 바라본 사람들을 고르면 파랑새와 점장밖에 없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사람을 곧이곧대로 바라본 점장과 파랑새는 주인공에게 튼튼한 벽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 이 세상을 살다 우연히 늦은 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24시간 운영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있는 가게를 만날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들어가서 무슨 빵을 살까. 남들은 이 빵에 들은 재료가 뭔지 물어볼까? 허무맹랑하고도 충분히 이 세계에서 실현 가능성을 지닌 듯한 생각을 가지고 여전히 살아간다. 개정판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설렘은 그대로다. 이 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빵에 넣어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따라오는 책임들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다시 한 번 오븐에 들어가 보자.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신발은 벗지 않은 채로.



......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p. 184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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